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아침이 왔음을 알지만
뜨고 싶지 않은 눈
얼어붙은 심장
굳어 있는 얼굴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들로 머리를 채우고
지켜야 할 약속들을 입 안에 담고서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까 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나는 네가 과거 어딘가에서 웃었던 것을 알고 있다.
네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너는, 너는 밝고 아름다웠다.
너는 순수했고 맑았다.
아침 태양처럼 웃음이 솟아 나왔고
기쁨 속에서도 별빛처럼 평온했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네 귀에 속삭였다.
누군가 네 눈을 흐리게 했다.
사랑 속에서 태어난 너는,
어느새 동화 속에서
연극 속에서 영화 속에서
부모님의 푸념 속에서
친구의 오해 속에서
이야기 속에서 살게 되었다.
어느 순간 이야기들이 손님처럼 너를 찾아왔다.
그 이야기 속에서 너는,
증명해야 했고
싸워야 했고
더러는 도망쳐야 했다.
이야기는 자주 찾아왔고
어떤 날은 하루종일 너를 붙잡았다.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지친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지친 것이다.
너는 화난 것이다. 이야기에 화난 것이다.
이야기와 싸울 수 없다. 도망칠 수 없다.
이야기는 손님이다.
네가 말해주기를 기다리는 손님이다.
너는 사랑이다.
네가 사랑이다.
사랑한다.
이 말 한마디 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처음 있던 곳으로 사라진다.
너는 이야기에서 놓여지고
온전해지고 새로워지고 꽃피어난다.
이유도 없이 기쁨이 너를 덮어버릴 것이다.
아무 걱정없이 들판을 거닐 것이다.
너는 사랑이다.
2024-05-06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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