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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et8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아침이 왔음을 알지만  뜨고 싶지 않은 눈  얼어붙은 심장 굳어 있는 얼굴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들로 머리를 채우고 지켜야 할 약속들을 입 안에 담고서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기를 기다리지만 누군가가 말을 걸까 봐 두렵기도 하다.  하지만 너는 우울한 것이 아니다.나는 네가 과거 어딘가에서 웃었던 것을 알고 있다.네 웃음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너는, 너는 밝고 아름다웠다. 너는 순수했고 맑았다.아침 태양처럼 웃음이 솟아 나왔고기쁨 속에서도 별빛처럼 평온했다.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네 귀에 속삭였다. 누군가 네 눈을 흐리게 했다.사랑 속에서 태어난 너는, 어느새 동화 속에서 연극 속에.. 2024. 5. 6.
망토 망토    무너진 날 나는,가슴속 사원을 찾아갔다.태고의 숨결을 간직한 곳심장 같은 태양이 비치는 그곳에서망토를 받았다. 망토의 이름은 감사.망토로 몸을 감싸고 깊고 어두운 구멍 안으로 뛰어들었다.분노의 뜨거운 불과두려움의 차가운 암흑을 지나 깊은 곳에 다다랐다. 고통으로 신음하는 작은 아이를 만났다. 그 아이는 바로 나였다.그 아이를 망토로 감싸며 말했다.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아이의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본 것이 마지막이었다.나는 정신을 잃었다.     관련글 :  https://theartofblossoming.tistory.com/110 머릿속 이야기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머릿속 이야기로 힘들어하시는 분들께 머릿속에 수시로 들리는 부정적인 이야기에 힘들어하.. 2022. 9. 4.
나의 고향 나에게 조금만 시간을 주어도 평화로워지리. 잠깐 나에게 한 줌의 기회를 주어도 나는 평화로워지리. 많지 않은 시간. 잠깐 눈 붙일 시간, 기지개 필 시간, 차 한잔 마실 시간 숨 한번 쉴 시간 그 시간만 주어도 나는 내 자리로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소용돌이와 여러 종소리들 사이를 지나 빠져 버릴 것이다. 고요한 곳, 따스한 곳, 향기로운 곳. 그곳은 내가 태어난 곳. 나의 고향에서 그대를 맞이하리라. 2022. 3. 2.
나는 오늘도 기다리네 나는 오늘도 기다리네. 늘 가던 그곳에서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네. 하늘은 푸르고 간혹 햇살이 내 눈을 부시게 하지만, 공활하고 허허로운 하늘은, 늘 그대로. 그래도, 나는 오늘도 기다리네. 내 숨겨진 간절한 마음을 누가 알아주길.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지만, 그녀가 알아주길. 내가 가진 것은 오로지 풀잎 같은 마음뿐. 뒤돌아보지 않는 마음뿐. 그 마음이 바람에 흩어지지 않길 바랄 뿐. 모래 같은 마음이지만, 매일 그 자리에 쌓이길 바랄 뿐이다. 어느 날, 나도 모르게 사방이 조용해진 날, 하늘이 잠깐,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지며 그녀가 하늘에서 내려와 나를, 나를 알아봐 줄 때, 내게 손을 내밀 때, 나, 그제서야, 감추었던 손을 내밀리. 새들은 놀랐다가 기뻐서 노래할 것이고 꽃들은 사방에서 피어난다. .. 2022. 2. 28.
열쇠 시는 열쇠다. 어떤 단어를 특정한 방식으로 나열하면 열쇠가 된다. 그 단어들을 무심히 읽다보면 마음 속에 어떤 문이 철컥 열린다. 그 문이 열리면, 나에게 있었을 것이라 한번도 생각도 못한 따뜻한 감정이 흘러나오고 눈물이 조금 흐르고 기쁨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천사가 깨어 난다. 2020년 3월 12일 목요일 --------------- 상단그림 : The bouquet by the window, Henri Le sidaner 2021. 12. 3.
당신이 수백년간 왕으로 산다면 당신이 왕의 삶이 좋다하여 수백년간 왕으로 산다면, 그 다음에 드는 생각은 아마 ... '왕이 아닌 삶'이 궁금할 거예요. 당신은 아마 전생에 지금의 당신을 제외하고 모든 체험을 다 했었을 거예요. 당신은 왕이였고 공주였고 거지였으며 평범한 사람이였고 영웅이였고 배신자였어요. 하지만 지금 당신의 삶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서야 전지 전능한 당신의 큰 영혼이 이 시대에 이 곳에 당신의 가족을 선택해서 당신의 몸으로 태어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러니 사랑하세요. 당신의 삶을. 당신이 의도를 가지고 선택한 삶인 걸요. 당신은 당신의 삶에서 사랑으로 삶이 꽃피는 것을 간절히 원했으니까요. 사랑을 선택할 때, 사랑이, 어떻게 당신을 꽃 피우는지 살펴보세요. 2013년 1월 .. 2021. 12. 2.
시(詩) 시(詩) 이 놈! 몇 개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내 마음 속에 들어 오려 하느냐! 나는 이미 거의 모든 단어들을 들어보았다. 저는 들어가려 하지 않아요. 당신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고 여기 왔을 뿐. 내가 아는 단어는 많지 않아요. 다만, 너무 오래 들고 다니고 너무 자주 들여다 보아서 손 때가 묻었을 뿐. 당신이 백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한 숨 돌렸을 때. 도로 위에 올라오는 수증기 사이에서 언듯 숨을 멈추었을 때 푸르른 하늘에 이상하게 밝은, 하얀 달이 보여 갸웃거릴 때 가슴 사이에 있을 법한 단어가 비어져 보이면, 그 작은 틈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와 맞아보여서 잠시 틈 사이로 놓아 볼 뿐이예요. 저도 몰랐어요. 그 단어가 그렇게 꼭 맞아서 당신의 벽돌들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당신의 성을 함락시키.. 2021. 12. 1.
영웅 영웅 환자분이 오셨다 처음 뵌지 3년째인 분. 의자에 앉자마자 혈당을 재었다. 환자분은 손을 주저하다가 내밀었다. 식후 2시간 257 점심은 뭐 드셨나요? "라면을 먹어서... " 밀가루는 혈당을 빠르게 올립니다. 요즘 운동은 하시나요? "....." 이렇게 당이 조절이 안되면 인슐린 맞으셔야 해요. 대기환자 9분. 시간이 없다. 차트기록을 하고 약을 처방하고 인사를 하려는 순간, 환자분 손이 보였다. 기름때가 묻은 손. 오른손 집게 손가락은 반만 남아 있었다. 공장에서 기계에 손가락을 잃었다고 했었지. 그날 따라 왜 갑자기 손을 유심히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혈당을 알려주는 손. 뭘 먹었는지 알려주는 손. 나에게 야단 맞을 빌미를 주는 손. 기름때가 손가락 주름 마다 있어 까만 줄이 보였지만, 손톱은.. 2021. 11.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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