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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상

시(詩)

by doctorpresent 2021.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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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이 놈!
몇 개 단어들을 늘어놓는 것으로
내 마음 속에 들어 오려 하느냐!
나는 이미 거의 모든 단어들을 들어보았다. 

저는 들어가려 하지 않아요. 
당신이 듣지 못하는 음성을 듣고 여기 왔을 뿐.
내가 아는 단어는 많지 않아요.
다만, 너무 오래 들고 다니고 너무 자주 들여다 보아서 
손 때가 묻었을 뿐. 

당신이 백명의 사람들을 만나고 한 숨 돌렸을 때. 
도로 위에 올라오는 수증기 사이에서 언듯 숨을 멈추었을 때
푸르른 하늘에 이상하게 밝은, 하얀 달이 보여 갸웃거릴 때 
가슴 사이에 있을 법한 단어가 비어져 보이면, 
그 작은 틈이 내가 가지고 있는 단어와 맞아보여서 
잠시 틈 사이로 놓아 볼 뿐이예요. 

저도 몰랐어요. 
그 단어가 그렇게 꼭 맞아서
당신의 벽돌들을 와르르 무너뜨리고 
당신의 성을 함락시키고, 
수 천년간은 메말랐을 것 같은 당신 땅에 비를 오게 할 줄은 
몰랐어요.

놀랐어요.
당신 땅에 그토록 많은 씨앗이 묻혀 있을 줄은.
그렇게 붉고 아름다운 꽃들은 처음 보았어요. 

제가 가지고 있는 단어 몇 개. 
당신이 시(詩)라고 부르는 단어들.

그냥 사랑이라 했으면 좋았을텐데. 

사랑. 


2021-03-01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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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그림 : Apple Tree, Gustav Klim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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