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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움의 기술 The Art of Blossoming

11. 사랑

by doctorpresent 2021. 9.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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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오해가 많은 단어가 있을까? 

사랑은 대상과 자신이 하나임을 알아차릴 때 생기는 느낌이다.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속성이 있고 나와 연결되어 있어서 나의 중심이 대상과 나 사이로 옮겨 갈 때 느껴지는 기쁨이다. 작은 나를 벗어나 더 큰 나로 들어갈 때 느끼는 즐거움이다. 대상과 내가 하나이기 때문에 나를 대하듯이 상대방을 정성을 다해 축복할 수 있다. 사랑은, 동질감과는 조금 다르다. 같은 입장, 같은 처지일 때 동질감을 느낀다. 사랑은, 내가 그녀와 하나여서 내가 사라질 때 느끼는 감정이다. 

 

어떻게 하면 대상과 하나라는 인식이 생길까? 있는 그대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면 된다.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상대방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마음은 이야기를 멈추고 이야기 속의 나는 사라지고 나는 투명해진다. 내 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열쇠와 자물쇠처럼 아귀가 딱 맞게 된다. 서로 날카로운 퍼즐처럼 딱 맞게 되고 경계는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상대방도 사라진다. 그때 나는 그 대상과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게 된다. 높고 동일한 진동수로 하나가 되면서 사랑의 상태로 옮겨간다. 

 

대상과 내가 분리되어 있다는 착각을 깊이 바라보자. 대상은 내가 인식할 때 존재한다. 대상은 내 의식 안에 있다. 대상이 나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면 그 대상을 인식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대상은 나와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 내 의식 안에 있으며 내 마음의 한 부분을 비추어준다. 대상은 내가 인식을 한다. 나는 누가 인식하는가? 나는 나를 인식할 수 있는가? 나를 포함하는 무언가가 나를 인식한다. 그것은 마음보다 큰 무언가이다. 그 무언가 안에 '내'가 있고 '대상'이 있다. 그 무언가는 누가 또 인식하는가? 이러한 질문은 나를 이야기에서 물러나게 한다. 내가 바라보는 대상, 그리고 나라고 생각했던 이미지는 더 큰 마음의 한 부분이 비치어진 또 다른 자신이다. 이를 깊이 바라보면 나는 나의 의식 안에서 나의 마음들과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렇듯 나와 대상이 사실은 하나인데 왜 분리 되어 있다고 생각할까? 이야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에서 벗어나는 것이 왜 어려울까? 이야기 속에 감정이 엉겨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보자. 나를 비난하여 나의 약점을 건드리며 나에게 모진 말을 한 사람이 있다면 이야기 속에서는 그는 공격자이고 악인이다. 나는 선한 사람이며 희생자이다. 내가 그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면 분노가 생기고 그를 이길 수 없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이 생긴다.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이 이야기와 엉겨 붙으면 이야기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이야기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감정은 강렬해지고 이야기는 여러 번 재생된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비슷한 이야기들을 끌어당긴다. 이야기에서 벗어나려면 현존하여 감사하는 마음을 회복해야 한다. 감사의 에너지는 엉겨 있는 에너지와 반대의 에너지이다. 두 에너지가 서로 만나 상쇄된다. 어둠이 빛을 만난 순간 사라지듯이 부정적인 감정은 감사를 만나면 생존할 수 없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와 대상의 모든 면을 껴안을 수 있을 때 가슴은, 사랑을 내뿜기 시작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라

자기 자신을 하찮은 사람으로 취급하지 마라

그런 태도는 자신의 행동과

사고를 옭아매게 한다.

어떤 일을 하더라고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하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아직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였더라도

자신을 항상 존엄한 인간으로

사랑하고 존경해야 한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면

결코 악행을 저지르지 않게 되고

타인으로부터 지탄받을

일도 저지르지 않게 된다.

그런 태도가 미래를 꿈꾸는 데있어

강력한 힘이 된다는 점을 잊지 마라.

-프리드리히 니체

 

사랑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남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놔 둘 수 없다. 자신을 미워하거나 떠받들게 된다. 자신은 사랑받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부족한 자신을 미워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을 어떡하든 바꾸려고 하거나 자신을 숨기려 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남을 사랑할 수 없다. 혹은 자신은 너무나 소중하기에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혹은 드러나지 않게 자신을 인정하도록 힘을 행사한다. 사람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고 압력을 가한다. 이런 상태에서도 남을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에서 벗어나 있다. 왜냐하면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되어야 자신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가 된다면 나를 사랑할 수 있고 다른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그릇된 방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도 뒤틀린 방법으로 사랑을 한다. 감사에 조건이 없는 것처럼 사랑에도 조건이 없다. 자신의 어떤 부분은 사랑하고 어떤 부분은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는 방송기자들이 우리 집에 왔을 때 예쁜 아이들은 인사시키고 못생긴 아이들은 지하실에 가두는 것과 같다. 이는 꽃을 만드는 일에 성공할 수 있도록 영리한 선택을 하는 것이지 사랑은 아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영리한 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예쁜 아이들은 더 예쁘게 꾸며서 사람들에게 자랑하려 하고 못생긴 아이들은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깊은 지하실에 가두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기자들이 촬영한 사진에는 밝고 예쁜 사진들만 남기 때문이다. 이 사진들은 만들어졌고 조작되었으며 기만되었다. 지하실에는 여전히 아이들이 울고 있다. 

이렇게 자신을 대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사랑을 할 수 없다.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이라 속이거나 자신도 사랑이라고 잘못 믿으면서 사랑한다. 자신의 행복과 성공에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가진 사람을 만족시키는 것이 사랑이라고 믿는다. 이는 사랑이 아니라 거래이다. 나와 상대방이 함께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니라 꽃을 만드는 것이다. 시간이 흘러 겉모양만 꽃이었으며 속은 플라스틱과 철사만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사랑이 변했다고 한다. 예쁜 아이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하실 문을 여니 우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속았다고 생각한다. 사랑이 변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사랑이 아니었을 것이다. 배신당했다고 하지만 거래가 끝난 것이다. 

 

“자기 자신은, 온 우주의 그 누구만큼, 당신의 사랑과 애정을 받을 자격이 있다.”

-붓다-

 

사랑은 자신부터 사랑할 때 결실을 맺는다. 자신 안에 사랑이 가득 찼을 때 사랑이 흘러 다른 이에게 흘러간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없다면 다른 이에 대한 사랑은 쉽게 왜곡된다.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하다면 세상을 보는 렌즈는 쉽게 일그러진다. 쉽게 '그림'으로 판단하고 이야기 속에서 갈망할 대상이나 통제할 대상으로 바라보게 된다. 다른 이가 자신을 사랑해 주기를 먼저 기다리지 말자. 먼저 자신을 사랑하자. 내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있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사랑한다는 것이다. 어둠과 밝음을 모두 수용하는 것이다. 나의 어두운 면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순수하고 온전한 아이들은 그 자체가 밝음이다. 어른으로 자라면서 반복된 생각들과 어두운 감정들이 엉기면서 이야기들이 생기고 내면에 자리 잡게 된다. 어린 시절 누군가 아이의 어떤 면을 부끄럽게 여기면 아이는 수치심을 배우게 되고 그 일이 반복된다면 자신의 어떤 면을 부끄럽게, 죄스럽게 여기게 된다. 태엽을 심어 준 어른은 이제 곁에 없지만 특정 생각과 수치심이 엉겨 붙은 이야기는 스스로 움직이게 되고 작은 계기에도 이야기는 재생된다. 유사한 방식으로 두려움을 품은 이야기, 분노를 품은 이야기, 질투를 품은 이야기들이 몇 개씩 혹은 수십 개씩 생긴다. 이러한 이야기는 마치 태엽이 감긴 장난감 같기 때문에 '태엽'이라 부르자. ‘태엽’은 반복된 이야기와 특정 감정이 엉겨 있는 것을 말한다. 이 태엽은 각각의 고유한 생명력이 있는 것 같다. 자아도 있는 것 같다. 어떤 저자들은 이를 ‘내면의 아이’, ‘그림자’라고 표현한다. 어떤 태엽은 단지 성가시게 하는 장난감 같지만, 어떤 태엽은 시한폭탄과 같이 무서운 것도 있다. 이 시한폭탄이 어떤 계기로 태엽이 풀리면서 움직이게 되면 여기에 휘둘리게 되어 되돌릴 수 없는 사고가 생기기도 한다. 이 시한폭탄과 같은 태엽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결혼생활을 파탄 낸다. 피할 수 있었던 사고를 피하지 못해 몸을 다치고 면역계를 약하게 하고 내분비계와 신경계를 교란시켜 건강을 잃게 한다. 이 태엽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 태엽에 휘둘리게 되고 태엽이 일으키는 감정에 반응한다. 수치심이라면 지금 다시 수치스러워하며 자신을 숨기려 한다. 분노라면 지금 분노를 풀 사람을 찾게 된다. 만일 이 태엽을 알아차린다고 하여도 이를 제대로 다룰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방법은 억누르거나 무시하거나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모두 사랑이 아니며 통제하는 것이다. 

나의 어두운 면을 사랑한다는 것은 어두운 부분을 억압하지도, 회피하지도, 모른척하지도, 남 탓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오히려 환영하고 받아들이고 온전히 느껴 주는 것을 말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온전히 바라보는 것이다. 모든 면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는지, 어떤 사람인 척하는지도 알아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 아래에 숨겨진 두려움, 분노도 가만히 지켜본다는 것이다. 자신 안에 우는 아이를 알아차리면 무시하지 말자. 지하실에 가두지 말자. 우는 아이는 울게 내버려 두면서 그 원인을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그 상황 탓이라고 분노하지 말자. 우는 아이를 알아차리고 그 아이를 이루고 있는 이야기와 감정을 바라보고 이해해 주고 감정을 느끼자. 그럼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고 예상 못한 선물을 줄 것이다. 우는 아이를 가두지 않고 다그치지 않고 변화하기를 바라지 않고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한다면 그 아이는 본 보습을 드러낼 것이다. 그 아이가 보석임을 알게 된다. 소망을 이루어주는 열쇠를 그 아이가 가지고 있다.

많은 문제의 근원은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이다. 평화롭지 않을 때 다음과 같이 물어보자. "나는 지금 누구인 척하는 거지?" 그 질문은 많은 경우에 홀가분함을 준다. 내가 다른 사람인 척 하는 것을 알아차리면 자유로워진다. 다음과 같은 질문도 큰 도움이 된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을까?"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온전히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녀가 온전히 그녀 자신이 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더 나은 내가 된 척하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사랑하는 것은 내가 그녀처럼 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니고 그녀를 나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서로가 온전하다는 것을 깨달으면 다른 사람이 되려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하면 어긋난다. 각자가 모두 고유하고 완벽한 퍼즐 조각이다. 온전히 자기 자신이 된다면 모든 퍼즐이 다 맞게 되어 경계는 사라지고 완전한 하나가 될 것이다. 

 

사랑이란 주의를 열고 경험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오픈 포커스 브레인 

 

자신을 제대로 사랑하면 역설적으로 자신은 사라진다. 자신의 어두운 면, 밝은 면을 모두 사랑하면 자신은 투명해지고 경계는 확장된다.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이야기 속의 '나', 에너지 집합제(에고, 작은 자아)의 생존에 집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어두운 면은 감추고 소망을 이룰 수 있도록 주위를 통제하면서 힘을 행사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이 행위는 자신과 남의 경계는 더 공고해지고 에고는 커진다. 

세수할 때, 샤워할 때, 길을 걷다가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자.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 무조건 사랑한다. 항상 사랑한다." 

나를 사랑한다는 것은 나의 온전함을 믿지만, 이 순간 특정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영혼이며 이미 온전함을 믿지만 이 순간 특정결과를 의도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결과에 대해 비난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조건을 보고 사랑을 거두어 들이지 않는다. 드라마 속의 역할로 낙인찍지 않는다.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 것은 자신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의 상태에서 온전히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이 경험과 관련하여 자신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하고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의미이다. 자신을 비난하는 것은 많은 질병과 사건의 원인이다. 자신을 살펴보고 높은 에너지로 감싸 안는 것은 많은 문제의 해결책이다. 

꽃을 만들기가 잘 되어서 아주 성공한 것처럼 보여도 꽃피움을 통한 것이 아니면 공허하다. 누구보다 강하고 남을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하여도 사랑이 없다면 정교하고 튼튼한 감옥을 만든 것에 다름 아니다. 금으로 만든 넓은 감옥 안에서 그는 자가 비행기를 타고 다니고 많은 힘을 행사하겠지만, 표정은 무표정하고 가슴에서는 어떤 노래도 흘러나오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승리자, 권력가, 재력가가 되어 사회의 모든 방면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다 하여도 꽃피움은 아니다. 그 곳에는 사랑이 없다.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 고린도전서 13:2

 

사랑이 가슴에서 흘러나오게 하려면 사랑하는 척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사랑에 반하는 낮은 에너지, 통제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기만 하고 변화시키려 하지 않고 함께 머문다면 저절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사랑은 대상과 내가 하나라고 느낄 때 흘러나오는 감정이다. 아무리 좋은 일을 한다고 하여도 상대방을 나와 다른 낙오자, 실패자라고 여기고 자신을 구원자로 여긴 상태에서 봉사를 한다면 사랑과 관계없는 행동이다. 자신을 우월한 사람, 더 성공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한 사람은 도움을 받을 낙오자, 실패자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한 것이지 사랑과는 관계없다. 내가 만일 먼 미래에서 다시 이곳에 왔다고 생각해보자. 지금 내 앞에 과거의 내가 있다.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에게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지혜를 줄 것이고 내가 아는 최선의 도움을 줄 것이다. 그를 바로 나라고 여길 때 사랑으로 행하게 된다. 부처가 모든 중생이 부처임을 알아차릴 때 사랑으로 대한다. 모두 각자가 그 순간의 자신의 처지와 지혜에 따라 최선을 다해 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아차릴 때, 사랑의 상태에 있게 된다. 말 그대로 하나인 것을 알고 거기에 맞게 영감에 따라 가장 도움이 되는 일을 자연스럽게 행하게 될 것이다. 어제의 당신은 당신이 아니다. 지금 바로 당신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당신이다. 

사랑을 하기 위해 득도를 하기 위해 홀로 산속에 갈 필요 없다. 우리는 살면서 언뜻언뜻 서로 하나임을 느낀다. 같은 풍경을 보고 같은 감정을 느낄 때 하나임을 느낀다.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그리고 나에게 아무런 이익도 없지만 남모르는 친절을 베풀기도 한다. 사랑은 친절과 항상 같이 다닌다. 보살핌, 정성과 함께 다닌다. 무거운 짐을 들고 가는 사람을 볼 때 마음이 재잘거리기 전 잠깐의 찰나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다. 내가 그 짐을 들어줄 수 있음을 알고, 내가 짐을 나누어 들면 그 사람이 한결 수월하다는 것을 안다. 도와 주고 싶은 마음이 들 때 바로 친절을 베풀자. 그 잠깐의 시간이 지나가면 마음은 여러 말을 한다. "지금은 바빠. 그 사람을 도울 시간에 다른 무언가를 하는 것이 나아. 그 사람을 돕는다고 해서 어떤 이득이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다른 사람을 볼 때 그를 내 자신이라고 생각하자. 나는 미래에서 온 사람이고 앞에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라고 생각하자. 혹은 내 마음의 어떤 부분이 거울에 비추어서 보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자. 이렇게 생각했을 때 어떤 친절을 베풀고자 하는 충동이 들면 그 충동대로 하자. 자신은 희생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나와 내 앞에 있는 그녀를 똑같이 보고 공정하게 대할 때 지혜로우면서도 사랑의 상태에 있게 된다.

그녀를 소중하게 여기고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그녀가 내 이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이기 때문에 축복하는 것이다. 그 대상과 내가 하나임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 대상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비(非)사랑 감정은 안아주고 소망은 이룰 수 있다고 믿어주는 것이다.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이미 온전함을 믿어주는 것이다. 정성을 더할 뿐이다. 

 

중략 -------------------------------

 

모든 사람은 깊은 차원에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상대방에서 보내는 사랑은 어떤 규제, 어떤 통제보다 효과적이다. 사랑은 축복을 포함한다. 그가 나 자신이기 때문에 그의 행복을 기원한다. 그가 기쁘기를 바란다. 사랑과 축복이 어떻게 상황을 변화시키는지 바바라 버거의 말을 들어보자.

 

내 아들이 발에 문제가 생겨 전문 병원을 다니고 있었죠. 어느 날 집에 돌아온 아들 녀석은 그 병원이 사람을 치료하는 곳이라기보다는 시끌벅적한 시장바닥 같다고 푸념을 늘어놓았어요. 진료 차례가 오려면 한나절을 기다려야 하고 막상 차례가 와도 의사들은 환자와 차분히 얘기하지도 않고 어떤 처방을 내렸는지조차 말해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고서 나는 다음 번에는 병원에 가기 전에 의사와 병원을 애정으로 축복하고,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병원의 모습과 진찰 방식을 시각화하라고 권해 주었어요. 또한 아들에게 병원에 있는 동안 의사와 간호사를 축복하면서 이 사람들이 환자들을 돕기 위해 얼마나 자신들의 삶을 헌신하고 있는지와 우리가 그들의 노고와 봉사에 얼마나 고마워해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라고 일렀습니다. 얼마 후 병원을 다녀온 아들은 이렇게 말했어요.

“정말 신기해요! 무엇보다도 병원에 도착해서 전혀 기다리지를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의사와 간호사를 계속 축복하고 있을 때 모두들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었어요. 누구나 미소를 지었고 아주 다정했어요. 그리고 이번에는 의사 선생님이 충분한 시간을 내어 치료 과정을 세세하게 설명해 주고 앞으로 몇 번을 더 치료해야 하는지도 말해 주는 거였어요.

 

사랑은 시간 너머에 있으며 시간을 이긴다. 물처럼 부드러워 그 대상과 내가 하나임을 알아주는 것이다. 그 대상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녀가 바로 나이기에 질투심은 생길 수 없다. 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므로 자랑할 것도 없다. 신과 함께 하는 것이므로 겸허해진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고 고마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다. 통제할 대상이 아니며 이미 온전하기 때문에 화낼 필요 없다. 그녀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므로 선악을 떠나 있다. 하나라는 인식이 진리이며 기쁨의 상태에 머물게 된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며 내밀한 모든 소망이 이루어지며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 꽃을 만드는 삶은 어느새 시들지만 사랑은 영원히 꽃 피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 고린도전서 13:4-8 KRV

 

자신을 사랑할 때 내면에서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보자. 마음이 평안하지 않고 불편할 때면 내면을 들여다본다. 다음과 같이 내면에서 자신과 대화를 해보자.

 

1. 사랑 : 알아차리고 높은 에너지로 감싸 안기 

먼저 감정을 알아차린다. 대부분 두려움 혹은 분노일 것이다.

"아무개야, 내 안에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 무엇이 두렵니?" (내면에서 답이 떠오르길 기다린다.) 

"너는 이 일의 결과가 좋지 못하면 실패자로 여겨질까 봐 무서운 거지?" (이 말이 맞다면 자기 자신은 느낌으로 알 수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도 괜찮아. 어떤 경우에도 사랑해. 정말 사랑해." (이 일의 결과가 좋을 거라고 자신을 설득하지 않는다.) 

"우리 두려움과 잠시 그냥 함께 있자. 무서워하는 아이와 함께 있자." (두려워하는 감정을 그저 느끼자. 무시하지도 변화시키려 하지도 않는다. 상상 속에서 그 감정을 어린아이로 보고 살포시 안아주어도 된다. 두려움이 아니라 분노라 해도 같은 방법으로 할 수 있다.)

2. 용서 구하기 : “네가 예전에 실패했을 때 너를 사랑하지 못해서 미안해. 그때는 너를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어.”

3. 용서하기 : “네가 이전에 한 실수와 실패들 지금은 괜찮아. 나는 다 용서했어. “

4. 감사하기 : “아무개야, 지금까지 잘 견딘 것만 해도 고마워. 하느님, 함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은 알지 못하는 보물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자신과 이 대화를 하면 감정이 비워지고 정화되고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자신과 화해를 하고 꽃피우는 삶이 시작된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상처는 아물고 평화로움이 흘러나온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하듯이 남도 사랑할 수 있다. 어떤 어려운 일 속에서도 서로의 사랑을 느낄 수 있고 이 사랑은 시간을 이겨내고 처한 상황과 관계없이 눈부시게 빛난다. 

사랑은 자신의 어두운 면뿐만 아니라 밝은 면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을 축복하는 것도 사랑이다. 어떻게 축복하는가? 자신에게는 밝은 면이 있다. 욕구라는 이름으로 반짝거리는 무언가가 있다. 그 반짝거리는 것을 알아차려서 그림 그리는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 축복이다. 그 원석에 숨어 있는 별을 하늘 높이 걸어두는 일이 '상상(想像)'이다. 

 

상상한다는 것은 정말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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