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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움의 기술 The Art of Blossoming

13. 회복

by doctorpresent 2021. 9. 24.

회복은 본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과정이다. 
본모습은 '온전함'이다. 회복과정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회복의 원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공명이며 또 하나는 상쇄이다. 두 원리 모두 우리 존재가 진동하고 있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먼저 공명을 알아보자.
공명 현상은 자연의 기본 법칙 중 하나이다. 서로 다른 두 체계(體系, system)가 있다고 하자. 한 체계가 특정한 진동수를 낼 때 다른 체계에서 그 진동수에 맞추어 진폭이 커지는 것을 말한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이 있을 때 피아노의 '도'음을 친다면 바이올린에서도 '도'음이 난다. 한 소리굽쇠를 울리면 떨어져 있는 다른 소리굽쇠에도 같은 소리가 난다. 만일 우리가 충분히 오랫동안 감사, 사랑과 같은 높은 진동수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진심으로 감사하고 온 마음으로 사랑한다면 우리 가슴에서 높은 진동수의 노래가 흘러나올 것이다. 우리 몸안에 세포마다 있는 소리굽쇠에 공명이 일어날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 몸의 질병이 회복된다. 진동수가 변하면 우리는 회복한다. 만물을 창조한 근원에게 감사하고 내맡긴다면 이에 공명하여 만물의 입자들이 공명하여 재배열하고 새로운 진동을 발산하여 본연의 모습이 드러날 것이다. 주변의 불협화음과 사건과 사고도 사라지고 평안과 조화가 대신 들어서게 된다. 감사와 사랑 상태에 있는 사람 곁에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평온해진다. 그가 축복한 커피는 더욱 맛이 좋아지고 노화방지물질의 농도가 높아진다[1]. 그가 요리한 음식은 건강에 이롭다.
공명의 신비로운 점은 동조(同調, tuning) 현상에서 좀 더 볼 수 있다. 동조는 물체들이 위상과 주기를 일치시키기 위해 서로의 에너지와 움직임을 맞추는 현상이다. 다른 두 개의 괘종시계를 같은 벽에 걸어두면 얼마 있지 않아 두 시계추의 위상이 같아져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 귀뚜라미와 개구리의 울음소리를 들어보면 서로 다른 리듬으로 울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서로 조화로운 울음을 낸다. 반딧불이들은 처음에는 제각기 반짝이지만 서로 동조하여 조화롭게 불을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지내는 여성들 사이에서 서로의 생리 주기가 전환되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만일 내가 감사와 사랑의 진동수를 낸다면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 사물들이 이 진동수에 맞추어 동조할 것이다. 자신과 만물이 같은 주기를 가지고 진동하며 같은 흐름 속에 있게 된다. 말 그대로 의기투합하며 한 마음이 되어 접혀진 소망이 펼쳐진다. 

회복의 두번째는 원리는 상쇄(相殺, offset)이다. 반대 위상의 두 파동이 중첩될 때의 간섭이다. 마루와 골이 만나서 합성파의 진폭이 영(無,zero)이 되는 현상이다. 반대되는 파동으로 서로 상쇄되는 것은 소음 제거 기술인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ation)’ 기술과 무척 유사하다. 외부의 소음을 수집하여 실시간으로 반대 파동을 만들어 서로 만나게 하면 상쇄되어 소음이 없어진다. 이 원리를 이용하려면 우선 특정 소음을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소음과 반대되는 파동을 내보내야 한다. 이 원리는 현존에서 살펴보았던 '알아차림과 높은 에너지로 하나 됨'과 정확하게 같다. 비사랑감정과 이야기를 알아차리고 감사와 사랑이라는 높은 에너지로 감싸 안으면 서로 상쇄를 일으킨다. 현존이 알아차림과 하나 됨으로 이루어지듯이 회복도 알아차림과 하나 됨으로 이루어진다. 현존할 때는 신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회복을 위한 알아차림의 대상은 자신의 어두운 면이다. 하나 됨은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선택함으로 이루어진다. 높은 에너지는 감사, 사랑, 상상이다. 감사와 사랑에는 용서, 책임감(미안함), 수용(바라봄, 놓아버림, 내맡김)이 포함되어 있다. 상상에는 축복이 포함되어 있다. 수용 자체가 높은 수준의 에너지이며 밝은 에너지이다. 있는 그대로 바라봄은 수용의 첫 시작이다. 어둠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는 것 자체가 높은 에너지로 다가가는 것을 의미하다. 이는 관찰자 효과에서도 볼 수 있다. 어두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면 그 자체로 감정에 변화를 일으킨다. 관찰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통제하지 않는 바라봄 자체가 높은 수준의 에너지이다. 그래서 그저 관조하기만 해도 두려움과 분노는 사라지는 것이다. 이때 경계해야 할 것은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지닌 채 관조해서는 효과가 없다. 변화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통제하려는 마음이며 꽃을 만드려는 마음이며 낮은 에너지이기 때문에 상쇄를 일으키지 못한다. 변화시키려는 마음을 내려놓고 오히려 두려움과 분노가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고요히 바라본다면 높은 에너지로서의 효과를 볼 수 있다.
사랑받지 못하고 인정받지 못한 감정, 이해받지 못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다. 그 감정이 반복적인 생각(이야기)과 뭉쳐지면 자체가 생명력을 갖게 된다. 독자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이러한 감정, 이야기 덩어리가 질병을 일으키고 사건을 일으킨다.
감정, 이야기 덩어리를 어떤 이는 '내면의 아이'라고 부르고 어떤 이는 '그림자'라고 한다. 나는 '태엽'이라고 부르겠다. 반복된 생각과 어두운 감정이 충분히 모이면 마치 태엽이 감기듯이 힘을 모았다가 계기를 만나면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 태엽은 독자적인 생명체처럼 움직이며 작은 자극에도 활동을 일으키고 이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감정과 생각에 휩싸이면 감정-생각-감정의 회로가 강화된다. 어두운 감정과 생각으로 똘똘 뭉쳐진 에너지는 마치 태엽이 풀리기 시작한 장난감과 같다. 태엽이 풀리면서 여러 사건과 질병을 몰고 온다. 각각의 사건과 질병에 대응한다면 피로해진다. 대응하고자 해도 대응이 가능한 것도 아니다. 감사가 없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태의 경험은 '태엽'을 만든다. 크고 작은 트라우마는 가끔은 무시무시한 시한폭탄과 같은 큰 '태엽'을 만들어낸다.
분노가 결합이 된 '태엽'은 무의식적으로 주변에 적을 만들게 된다. 나는 어느 순간 분노를 터뜨리면서 가해자가 된다. 두려움이 결합된 어떤 반복된 생각은 또 다른 태엽을 만들어낸다. 이 태엽은 공격자를 끌어당긴다. 어떤 계기에 의해 태엽이 움직이면 나는 희생자, 피해자가 된다. 태엽은 정보와 에너지의 복합체이다. 정보는 생각이고 에너지는 감정이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두 가지 감정이 일어난다. 하나는 분노와 또 다른 하나는 두려움이다. 이 순간 자신이 바라는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 순간을 자신이 이길 수 있고 자신이 옳다고 혹은 우월하다고 여긴다면 분노가 생긴다. 분노는 격노, 증오, 짜증, 질투, 지적질, 기대, 협박, 강압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 순간 자신이 바라는 순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이 순간을 자신이 이길 수 없고 자신이 그르다고 혹은 열등하다고 여긴다면 두려움이 생긴다. 두려움은 공포, 불안, 슬픔, 수치심, 죄책감 등 다양하게 나타난다. 죄책감이란 내가 이 시간에 이 장소에서 이 모습으로 이 일을 하면 안 된다는 생각과 함께 드는 감정이다. 지금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과 느낌이다. 수치심은 내가 어딘가 결핍되어 있어서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생각과 느낌이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많은 질환과 사고와 관련이 있다. 자신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벌을 주려는 마음이 무의식에서 활동한다. 스스로에게 벌을 내리기 위해 질병을 끌어당긴다. 죄책감과 수치심이 있는 상태에서는 면역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질병으로부터 회복이 어렵다. 질병을 불러오고 다시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병세가 깊어진다. 죄책감과 수치심은 여러 가해자들을 끌어당기며 가해자들은 나의 숨은 태엽을 자극하여 부정적인 감정을 증폭시킨다. 증폭된 부정적인 감정은 나를 드라마 속으로 밀어넣는다. 평온한 상태라면 하지 않았을 판단과 결정을 하게 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행동을 한다. 
회복과 치유는 태엽(감정, 이야기 덩어리)를 해체하는 것이다. 우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시작이다. 소음 제거 기술인 ‘노이즈 캔슬링(Noise Cancellation)’ 기술의 시작이 소음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인 것처럼 태엽을 이루는 감정을 우선 알아차리고 함께 있는 이야기를 알아차려야 한다. 분노 혹은 두려움과 같은 비사랑 감정은 ‘이야기’, ‘태엽’을 찾을 수 있는 나침반 역할을 한다. 분노와 두려움 모두 무언가 바꾸려고 한다. 분노는 주변을 바꾸려고 한다. 두려움은 자신이 부족하다고 여겨 자신을 외부에 맞추어 억지로 다른 사람인척하게 한다. 이 감정을 나침반으로 삼아 숨어 있는 태엽을 찾아야 한다. 감정을 찾았으면 이 감정과 함께 어떤 이야기들이 반복되는지 내면을 살펴본다. 이야기들이 충분히 반복된다면 믿음, 뿌리 생각이 된다.
두려움과 함께 다니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능력이 없어. 나는 운이 없어. 나는 늘 기회를 놓쳐. 충분하지 않아. 나 때문이야. 안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아.

분노와 함께 다니는 이야기도 살펴보자.
이렇게 된 것은 그 사람 때문이야.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렇게 되었어. 그때 그 일만 아니었어도 이렇지는 않았을 거야. 그건 분명 나를 공격한 거야. 나는 반드시 옳아야 해. 내가 정의야. 그 사람을 못살게 굴어야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어.

감정과 이야기를 알아차렸다면 높은 수준의 에너지를 선택해야 한다. 태엽을 발견한 후에 이 태엽을 억누르거나 없애버리려 하거나 변화시키려 하면 효과가 없다. 태엽을 알아차린 사람들이 모두 회복을 하지 못하는 이유이다. 태엽을 알아차린 것은 회복의 일부 과정이다. 온전히 과정을 다 마치려면 높은 에너지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태엽을 알아차리면 우선 감사하자. 어두운 지하실에서 의식의 표면에 떠오른 것을 감사하자. 더 큰 질병과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 알아차린 것을 감사하자. 그리고 사랑하자. 내가 슬퍼서 울고 있을 때 나를 그저 안아주고 공감해 주는 사람이 나를 위한 사람인가? 아니면 울고 있는 내 옆에서 왜 슬퍼하면 안 되는지, 왜 울면 안 되는지 이유를 조목조목 대며, 지금 웃어야 한다고 다그치는 사람이 나를 위한 사람인가? 무시무시한 태엽도 작은 어린아이와 같다. 어둡고 음침하게 보이는 그림자도 순진한 어린아이와 같다. 그 아이를 충분한 감사, 사랑, 용서, 내맡김으로 대하면서 기대를 내려놓는다면, 온 마음으로 감싸 안는다면 그 어린아이에서 눈부신 빛이 뿜어져 나온다. 말 그대로 연금술이며 마법과 같다. 그렇게 비사랑 감정이 상쇄된다면 확언이 도움이 된다. 확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있는 그대로 사랑스러워.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행운아야. 힘들었던 일도 지금은 감사한 일이야. 지금 바로 내 앞에 기회가 있어. 모든 것은 충분해. 그 사람에 감사할 수 있어. 부모님도 충분히 사랑을 받지 못한 것을 이해해.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난 것이 축복이 되었어. 나는 항상 옳지 않아도 돼. 나도 실수할 수 있어. 점점 더 나아지고 있어. 그 사람을 좀 더 이해해 보자.

이러한 과정에서 고통은 신속하게 소멸한다. 고통이 이러한 방법으로 없어지는 것은 고통이 파동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통을 도려낼 수는 없다. 고통을 파괴할 수 없다. 도려내고 파괴하려고 애쓰면 더 강해질 것이다. 알아차린 후 감사와 사랑으로 녹일 수 있을 뿐이다.



중략 -------------------------------


상대방을 나의 거울삼아, 상대방에서 보이는 거슬리는 점을 자신의 내면에서 찾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다. 다른 사람을 이상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판단하는 것은 쉬운 일이며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일은 번거로운 일이다. 하지만,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은 충분한 보상을 받을 것이다. 
태엽을 알아차리고 상쇄하는 일은 회복에서 중요하다. 태엽이 처음 생겼을 때의 기억을 찾아내면 첫 태엽을 풀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첫 기억은 아마도 여섯 살 이전일지도 모른다. 여섯 살 이전에는 외부의 경험이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프로그램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년 시절의 기억이 떠오를 때까지 회복을 미룰 필요가 있을까? 최근 혹은 오늘 발견된 태엽에 대해 알아차리고 높은 에너지를 선택해도 된다. 오늘 발견된 태엽도 어린 시절 생겼던 태엽도 같은 렌즈, 같은 신념에 의해 생겼기 때문이다. 모든 부정적인 신념의 뿌리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나는 신에게 버림받았다.’
또 하나는 ‘나는 어떤 조건이 부족해 사랑스럽지 않다.’이다.
‘나는 운이 없다. 나는 주변에 도와줄 사람이 없다. 나는 중요한 순간에 사고가 일어난다.’등등 여러 부정적인 신념이 있지만, 모두 나는 신에게 버림받았다.’라는 신념을 같은 뿌리로 두고 있다. 
‘나는 부족한 점이 있다. 나의 진짜 모습을 알면 사람들이 나를 떠날 것이다. 내가 여기서 이런 모습을 하면 안 될 것 같다.’등의 신념은 모두 나는 어떤 조건이 부족해 사랑스럽지 않다.’라는 신념을 같은 뿌리로 두고 있다. 이 두 신념이, 두 렌즈가 상황에 따라 여러 부정적인 경험을 만들어 내지만, 경험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유사한 패턴의 이야기와 비슷한 감정이 엉겨있다. 같은 신념, 같은 렌즈가 만들어내는 경험이기 때문이다. 꽃피움의 세계에서는 과거, 현재, 미래가 없다. 오늘은 과거의 모든 순간, 미래의 모든 순간과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오늘을 정화하면 과거를 정화하는 것이다. 유년기의 기억이 당장 떠오르지 않아도 오늘의 경험에 엉겨 있는 감정을 감사와 사랑으로 정화하면 유년기까지 정화될 것이다. 오늘을 정화하고 내일 또 오늘을 정화하다 보면 유년기의 기억이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럼 그때 유년기의 기억까지 정화하면 된다. 이러한 정화와 회복을 통해 다음의 신념, 렌즈를 다시 찾는다면 정화와 회복은 완성된다.    
하나는 ‘신은 언제 어디서나 내 곁에서 은총을 내려주고 계신다.’
또 하나는 ‘나는 조건에 관계없이 사랑스럽다.’이다. 
이 두 신념은 렌즈로 삼는다면 늘 천국에 살 것이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평화에 이른다.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데 필요한 열쇠는 '감사'이다. 이 순간이 완벽하고 새로운 순간이며 열쇠가 되고 춤을 추는 공간이며 새로운 창조의 시점임을 이해하고 감사하는 것이다. 상처에서 회복을 하였다면 꽃 피우는 삶이 수월해질 것이다. 이제 꽃을 피우는 세 가지 차원인 노래, 그림 그리고 춤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노래를 불러보자.


[1] 김상운, 왓칭: 신이 부리는 요술 (정신세계사, 2011), 2장 왜 바라보는 대로 변화할까?
[2] 전홍준,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 (에디터, 1998), 첫째 마당 -신념, 상념, 감정 다루기
[3] Deborah Ford, The Dark Side of the Light Chasers (Riverhead books, 1998), Chapter 6 "I Am That". 국내에 번역된 책은 다음과 같다. 데비 포드, 신업공동체 역, 그림자 그리고: 빛을 쫓는 사람들의 어두운 면 (빛,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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