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라, 가슴이여. 오늘은 너의 시간!
내일이면 너는 죽어 있으리니
반짝이는 별도 볼 수 없고
지저귀는 새소리도 들을 수 없다.
노래하라, 가슴이여. 너의 시간이 불타는 동안
- 헤르만 헤세
노래란 무엇인가?
노래는 우리가 내보내고 있는 진동수이다. 우리의 내면에서 펼쳐 나오는 에너지 수준이다. 존재 상태를 보여준다. 우리 가슴에는 귀에 들리지 않는 오르골이 있는 것 같다. 그 오르골은 항상 노래를 내보내고 있어서 우리 가슴을 중심으로 파문을 만들어내고 물결을 일으켜서 동심원처럼 끝없이 퍼져 나간다.
노래는 그림과 춤 사이 중간 단계의 진동수이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다. 세 차원 중 가장 기본적인 차원이고 만물의 배경이 된다. 춤과 그림을 이어준다. 이곳과 저곳 사이의 공간은 비어있지 않고 노래로 채워져 있다.
우리는 노래를 언제 하는가?
우리는 항상 노래를 하고 있다. 항상 우리의 가슴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밝은 노래인지 어두운 노래인지가 다를 뿐이다. 이 노래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나와 주변에 영향을 주고 있다. 거리와 시간의 제약을 벗어난다. 가슴에서 사랑이 뿜어져 나오면 그 대상이 멀리 있어도, 지금 함께 있지 않아도 사랑의 영향을 받는다. 노래는 거짓을 모른다. 마음이 어떤 이야기를 지어내어도 노래는 나의 존재 상태를 진실하게 보여준다.
옛적부터 이야기는 거짓말이라도 노래는 참말이더라고
- 박경리 '토지' 1부 1편 18장 유혹 중
우리가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알려주는 지표가 있다. 바로 감정과 느낌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우리가 지금 어떤 노래를 부르는지 알려주고 우리가 어떤 존재 상태에 있는지도 알려준다.
노래에 관련하여 가장 좋은 질문은 다음과 같다.
‘나는 지금 평온한가?’
우리가 평온하다면 우리는 잘 조율되어 있으며 밝은 노래를 하고 있다. 평온함에는 고양된 기분, 기쁨, 사랑이 포함된다. 우리의 가슴은 열려있고 에너지 밸브도 활짝 열려 있다. 자동차의 전원은 켜지고 브레이크는 부드럽게 풀려 있다. 액셀을 밟으면 달릴 준비가 되어 있다. 반대로 평온하지 않다면 어두운 노래를 하고 있다.
평온하지 않다면 여러 비(非)사랑감정을 경험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분노, 두려움, 죄책감, 수치심, 슬픔, 우울, 질투, 무기력 등이다. 가슴은 닫혀 있고 에너지 밸브는 닫혀 있다. 자동차의 전원은 자주 꺼지고 브레이크는 잠겨 있어서 액셀을 밟아도 자동차는 뜨거워지고 연기를 내면서 힘겹게 천천히 가다가 멈추곤 한다.
감정을 통해서 우리가 부르는 노래를 알 수 있다면 노래의 진동수를 바꿀 수 있는가? 가능하다. 하지만 현명해야 한다. 노래의 차원에서도 노래를 '만드려고' 하면 실패한다. 평온한 척하면 평온해 질까? 사랑이 많은 사람인 척하면 사랑이 흘러나올까? 그렇지 않다. 한 사람을 오랫동안, 혹은 많은 사람을 잠깐 속일 수는 있다. 하지만 자신은 한순간도 속일 수 없다. 선한 의도를 가지고 있지만 노래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척하는 삶이 유일한 삶처럼 느껴질 수 있다. 사랑이 가득 찬 노래를 하는 척한다. 하지만 내면은 평온하지 않고 사랑은 흘러나오지 않고, 통제해야 하는 두려움과 피로함이 있기에 여전히 노래는 어둡다. 노래를 '만들려고' 하지 말고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노래의 차원에서 사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신에게 감사 하는 것이다. 신은 이 순간과 동의어이다. 신은 삶과도 동의어이다. 지금 여기를 알아차리고 감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삶에 감사를 표하는 것이다.
둘째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특히 자신의 어두운 면을 알아차리고 받아들임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노래의 차원에서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가지고 어떤 순간에서도, 어떤 곳에서도 선택할 수 있다. 우리에게 많은 자유와 선택권이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모래주머니를 여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수준의 자유이다. 자리만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수준의 행위들이며 질적인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게다가 이야기 속에서의 선택권이어서 갈등이 연장되거나 갈등을 잠시 숨겼다가 다시 만나는 상황들이 반복될 뿐이다.
이러한 제한된 선택권 마저도 많은 경우 어떤 조건이 충족될 때만 가능하다. 어떤 물건이든 살 수 있을 것 같지만, 어느 정도의 돈이 수중에 있어야 가능하다. 돈만 있어도 되는 것도 아니며 원하는 물건이 시장에 있어야 가능하다. 나보다 더 빨리 사는 사람도 없어야 한다. 어떤 행동도 가능할 것 같지만, 법적인 테두리, 사회 규범, 암묵적인 규칙 내에서만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도 가능한 것이 있는데 바로 감사이다. 지금 신 앞에서 감사를 선택할지 그렇지 않을지는 오로지 나에게 달려 있다. 또 하나 언제나 가능한 자유가 있다. 이 순간 내 자신이 되는 것에 저항할지, 허용 할지도 내게 달려 있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감사는 노래의 진동수를 올리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은 언제나 사용할 수 있는 열쇠이다. 감사와 사랑은 나의 존재 상태를 상승시킨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나의 존재 상태를 언제든지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느 곳을 갈 수 있고 무엇을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아닌 나의 진동 상태를 평화와 사랑의 단계로 올릴 수 있는 자유이다.
감사는 마치 자동차의 전원을 켜는 것과 같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브레이크를 푸는 것과 같다. 자동차의 전원이 들어오고 브레이크가 부드럽게 풀려 있다면 원하는 곳에 가능한 속도로 갈 수 있을 것이다.
감사를 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어떤 대상에 감사를 한다는 것은 그 대상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선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그 대상의 가장 훌륭한 면에 주목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훌륭한 부분을 소중한 것으로 인정하고 기뻐한다는 의미이고 그 빛나는 부분을 알아준다는 의미이다. 감사하는 행위는 누군가 자신을 축복하는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지금 여기에 선물을 보내주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금 여기에서 은총을 받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감사는 이 순간을 받아들이게 하고 현재에 존재하도록 도와준다. 이 순간에 대한 해석과 판단을 덧붙여 이야기 속으로 끌어당기게 하려는 마음을 조용하게 한다. 감사하게 되면 우리가 내뿜는 노래는 높은 수준으로 고양된다. 감사 자체가 하늘에 보내는 최상의 기도이다.
어떤 대상에 대해 감사를 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이 감사할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은 좋은 날씨, 맛있는 음식, 행운, 성공 등이 있다. 언제 감사할 수 있을까?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 사람들과 관계가 좋을 때, 자신의 소망에 가까이 다가간다고 느낄 때 감사할 수 있다. 매 순간 주변에서 감사할 거리를 찾고 감사를 표할 수 있다면 밝은 노래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감사할 거리를 찾을 수록 감사할 만한 일이 점점 많아질 것이다. 자신이 그동안 받은 축복을 헤아린다면 축복은 더 많아질 것이다. 유사한 에너지는 서로 끌어당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통 감사하기 어려운 대상, 사람, 상황에 대해서도 감사할 수 있을 때 감사의 진가는 나타난다. 삶이 어렵고 힘겹다고 생각할 때 감사를 한다면 그 속에 숨은 보물을 찾을 수 있다. 삶을 다른 맥락에서 볼 수 있으며 현재는 새로운 삶을 창조할 수 있는 비옥한 땅으로 변모한다. 감사의 대상을 점점 더 넓혀 모든 것에 감사를 하고 감사하는 시간을 점점 늘려 항상 감사할 수 있다면, 조건 없이 감사할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무적이 될 것이다. 정말로 적이 사라질 것이다. 천사들에 둘러싸일 것이다.
어떻게 무조건적인 감사를 할 수 있을까? 나를 괴롭히는 사람에 대해 감사해 할 수 있을까? 힘든 상황에서 어떻게 감사할 수 있을까? 다음과 같이 관점을 달리해보자.
•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 내 감정과 생각에 끌려와 이 역할을 해주어 당신에게 감사합니다.
이러한 감사에 도달하기 위해 다음을 살펴보자.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왜 사는 것일까? 무엇을 이루기 위해서 인가?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인가? 병치례 없이 장수하는 것이 최종 목적인가? 사회계층의 가장 높은 층까지 올라가는 것이 목적일까? 아닐 것이다. 가장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내가 누군인지 알기 위해서이다.
우리는 존재 상태를 경험하기 위해 여기에 있다. 내가 누군지 어떻게 아는가?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상황 속에서 내가 누군지 알 수 있다. 관계를 통해서 알 수 있고 삶의 맥락 속에서 알 수 있다. 주변에 아무도 없이 홀로 있다면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마음 깊이 받아들인다면 곁에 있는 사람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이 상황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 이 사람 앞에서, 그 상황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초점을 맞춘다면 선한 자와 악한자, 가해자와 희생자의 이야기 속에서 벗어난다. 모두가 모두를 비추고 있음을 알게 되며 모두가 지금 있는 그대로 온전하며 완전하고 완벽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 앞에 있는 사람과 상황은 내가 품고 있는 감정과 생각과 연관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아채는 사람은 드물다. 자신을 주의 깊게 관찰한다면 나의 감정과 생각의 패턴에 따라 맞닥뜨리는 사람과 사건의 패턴이 짝을 이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일이 일어나서 화가 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은 반대이다. 내 안의 화가 있다면 나의 무의식은 화를 분출할 만한 계기를 찾아 헤매게 된다. ‘나는 희생자이다.’라는 신념이 있다면 무의식은 거기에 걸맞은 경험을 미리 준비하고 있다. 이 점을 깊이 바라본다면, 나의 감정과 생각에 동조하여 내 앞에 등장한 사람과 상황에 대해 감사할 수 있다. 이 사람은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기 위해 기꺼이 이 역할을 해 주었다. 상대적인 이 세상에서 우리가 아름다움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추함이 존재해야 한다. 내가 선망하는 삶이 어떤 것인지 알기 위해서는 혐오할 만한 삶이 존재해야 한다. 나는 그러한 삶을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삶을 몸소 살아내는 그 사람의 본질을 꿰뚫을 수 있다면 그를 다르게 바라볼 것이다. 그러한 알아차림이 고통을 끝내게 한다. 진실을 알아차리고 우리는 새롭게 선택할 수 있다. 이 관계에서, 이 상황에서 내가 누군지 알아차린 후 새롭게 선택할 수 있다.
힘든 사람과 있을 때, 힘든 상황에서 감사를 할 수 있다면 숨어 있는 보물을 드러낼 것이다. 매 순간 그 상황은 그 자체로 온전하고 완벽하다. 항상, 우리의 의도를 도와주는 힘과 방해하는 힘이 있다. 힘든 사람과 있을 때 힘든 상황에 대해 감사하게 되면 높은 진동수를 발하게 되고 우리를 도와주는 힘이 활성화된다. 감사를 하게 되면 처음의 우려스러운 상황이 새로운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된다. 물이 잔에 반만큼 차 있을 때, 반만큼이나 물이 있음을 감사하면 물이 풍부해지는 상황을 만날 것이다. 반밖에 없음에 걱정하거나 분노한다면 물은 점점 더 줄어들 것이다.
만일 바라는 상황을 만났을 때는 어떻게 감사해야 하는가? 바라는 상황이라면 감사하기가 쉬울 것 같지만,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기보다는 안도를 하거나, 자만을 하거나 집착을 하며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이야기 속에서, 경쟁자와 악한자와 맹수와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보물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안도한다. 그리고 그 보물, 행운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그 보물이 없어지거나 변하려는 작은 징조에도 분노하거나 두려워하며 집착한다. 바라는 상황이 너무나 만족스러워 이 상황을 잡으려고 하고 유지하려고 하면 오히려 그 축복이 시들어 버린다. 상황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낮은 수준의 에너지이다. 원하는 상황에 집착한다는 것은 그 상황이 끝날까 두려워한다는 감정이 숨어 있다. 바라는 상황이 왔을 때 선택할 수 있는 훌륭한 태도는 그 축복을 주신 누군가에게 감사하는 것이다. 자신이 해 낸 것이 아니라 신이 도왔기 때문에 가능했음을 안다면 저절로 겸손해질 것이다. 언제든 사라질 수 있음을 알고 그저 감사해한다면 내맡김의 상태에 도달할 것이다. 집착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태도가 오히려 축복을 오래 지속시킬 것이다. 축복은 새와 같아서 축복을 잡고 있으려 하면 도망간다. 손을 펴고 축복을 놓아주면 손 위에 오래 머물 것이다. 이렇게 감사할 대상의 범위를 점점 더 넓혀가 주변의 모든 만물에 대해 감사를 할 수 있다면, 어떤 특정시간, 특정 조건에 감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이 좋을 때나 좋지 않을 때에도 항상 감사를 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말 그대로 천국에 있게 될 것이다.
세상 모든 만물에게 감사할 때 누구에게 감사를 표하는 것일까? 바로 신에게 감사를 보내는 것이다. 모든 만물은 바로 신이기 때문이다. 신은 형상에서 자유롭다. 무형의 공간을 주목하는 것은 신을 의식하는 것과 같다. 무한, 무(nothing)와 같은 무형의 공간을 상상할 때 명상의 상태와 유사해지고 뇌파는 일관되고 느려지고 알파파를 낸다. 신이 이 순간 존재하고 내가 지금 여기에 ‘존재함’을 그저 감사한다면 심장은 건강한 상태가 되고 심박 변이도(HRV)는 일관된다. 무한, 무(nothing)의 무형을 주목하고 감사를 선택한다면 신에게 무조건적인 감사를 보내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뇌과 심장은 서로 동조하고 가장 높은 수준의 노래를 하게 될 것이다.
만일 형상으로 나를 보려 하거나 음성으로 나를 찾는다면 이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는 것이니 능히 여래를 보지 못하리라.
- 금강경
감사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선언은 다음과 같다.
하느님(부처님)! 감사합니다!
여기에 숨어 있는 말을 포함해서 진술 하면 다음과 같다.
(공간 혹은 호흡을 알아차리며, 혹은 감사할 거리를 알아차리며) (나의 생명과 삶을 주관하는 나보다 더 큰 어떤 존재인) 하느님! (지금 나와 함께 계셔 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하기가 중요하지만, 감사하기가 어려울 때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현존하지 않고 이야기에 빠져 있어서 신과 나와의 관계를 잊어버린 경우이다. 다른 하나는 자신의 어두운 면(태엽)이 활성화되어 있을 때이다.
첫 번째 이야기에 빠져 있는 경우부터 살펴보자. 이야기에서 놓이기 위해서는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다는 것은 이 순간 이야기에 빠져 있는지 살펴보아서 깨어 있으란 뜻이다. 지금 자신을 살펴보아 평화로운 상태가 아닌데 어떤 이야기에 빠져 있는지 모른다면 이미 이야기에 휘둘리고 있는 것이다. 어떤 이야기인지 알아차리면 이야기에서 놓일 것이다. 이야기는 보통 밧줄을 뱀으로 여기는 것처럼 어떤 상황을 '그림'으로 해석하고 판단할 때 일어난다. ‘저 사람이 저렇게 나를 바라보는 것을 보니 나를 싫어하는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으니 당신이 나에게 맞추어야 해.’ 마음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지어 낸다. 이야기임을 알아차린다면 이야기에 휩쓸리지 않을 것이다. 이야기가 있음을 알아차리고 이 이야기에 감추어진 감정이 무엇인지 알아차리자. 분노라면 분노를 통제하거나 억누르거나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그저 느껴보자. 그렇게 하기만 해도 분노는 사그라든다. 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자. ‘내가 무엇인가에 화가 나 있구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밝혀질까 봐 화나는 것일까? 나는 어떤 사람인 척하고 있는가?’ 이 질문을 하게 되면 이야기는 사라지고 진정한 성찰만이 남게 된다. 내면에서 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누군가 찾아보자. 가만히 내면을 지켜보면 재잘거렸던 마음이 고요해진다.
두 번째 자신의 어두운 면(태엽)이 활성화되어 있어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어려운 경우이다.
우리는 감사를 ‘선택’ 할 수 있으며 또 하나 드물게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알아차리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감사하고 자신의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한다. 자신이 가치가 없다고 여겨지는 상황일수록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중요하다. 자신 안의 어두운 부분을 사랑하는 것이다. 감사하기가 어려운 상황이 반복된다면 자신 안에 태엽이 있지 않은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일과 관련되어 고착된 어두운 감정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반복되는 생각의 패턴이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 따로 시간을 내어야 할 것이다. 이 태엽에 대해 대해서는 <회복>편에서 다루었다. 이러한 과정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며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우리 자신을 관찰하면 많은 경우에 자신이 되기보다는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이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다른 사람인 척한다는 것은 이미 나는 그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척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라고 강하게 긍정하는 셈이다. 다른 사람인 척 하기는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어느새 탈진한다. 본래의 자신을 부정하기 위해 저항과 억압이라는 낮은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에 감추어진 자신은 더 강화되고 내부의 압력은 올라가다가 어느 순간 폭발한다. 다른 사람인 척 가면을 쓰는 사람들이 성공하는 듯하다가 사건, 사고를 일으키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왜 다른 사람인 척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인 척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는 성공하지 못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유일하다. 자기 자신 외에 다른 사람이 될 수 없다. 역설적으로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이 된다면 부정적인 면은 상쇄되고 더 빛나는 모습으로 변모한다. 자기 자신이 되는 것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삶이 한결 쉬어진다. 다른 것을 신경 쓸 필요 없이 자기 자신만 되면 되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어두운 면과 밝은 면을 모두 껴안는다는 의미이다. 나를 사랑하는 과정은 나를 알아차리고 인정하는 과정이다. 어두운 부분을 알아차리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바로 정화이다. 내면이 깨끗해진다는 것이고 시야가 선명해진다는 의미이다.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가장 높은 수준의 선언은 다음과 같다.
나는 나를 인정하고 사랑한다.
여기에 숨어 있는 말을 포함해서 진술 하면 다음과 같다.
나는 (이 순간 깨어서 나 자신의 어두운 면을 알아차리고 바꾸려 하거나 숨기려 하지 않고) 나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 느끼고 수용하고) 사랑한다.
중략 -------------------------------
질병에 집중하지 않고 생명의 근원에 집중하면서 그저 감사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면 생명의 근원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고 같은 진동수로 진동하는 것이며 하나가 된다. 그 높은 진동수가 질병을 회복시키고 문제를 해결한다. 신과 마찬가지로 부모님도 자신을 존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신 분들이다. 그러나, 누구나 부모님에 대해 크고 작은 서운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있다. 그 마음을 푸는 것이 건강을 회복하는데 중요하다.
중략 -------------------------------
노래는 근원에 대해 감사할 때 흘러나오며, 자신을 사랑할 때에도 흘러나온다.
중략 -------------------------------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문제의 답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시랑해.”라고 말하는 순간 변화가 시작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이 일에서 배운 것만을 생각하자. 자신을 비난하지는 말자.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자신이 더 사랑스러워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스러운 사람인 척하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사랑을 품은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하면 자신을 비난하지 말자.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알아주자. 자신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자. 거울을 볼 때마다 자신에게 고맙다고 하자.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은 잘 견뎌주었다. 자신에게 감사하고 사랑하자. 그 순간 노래가 흘러나오고 새로운 문이 열린다. 그 문을 통해 새로운 길이 나타난다.
근원에게 감사하고 자신을 사랑한다면 가슴으로부터 높은 진동수가 흘러나온다. 이 노래는 온 세상을 향해 물결을 일으킨다. 사랑은 만물의 고유 진동수이기 때문에 사람, 사물, 빈 공간 할 것 없이 모두가 이 노래를 알아차리고 공명한다. 이 상태에서 우리는 자신의 밝은 면을 사랑할 수 있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살펴본다면 진흙 속에 보석처럼 반짝이는 무언가를 알아차릴 수 있다. 그것은 ‘욕구’이다. 밝은 부분을 사랑하는 과정은 욕구를 찾아서 그림 그리는 차원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욕구는 소망이 된다. 진흙 속의 작은 보석이 하늘의 별이 되는 것이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1] 전홍준,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 (에디터, 1998), 다섯째 마당- 생명의 근원과 하나되기.
[2] 전홍준, 완전한 몸 완전한 마음 완전한 생명 (에디터, 1998), 첫째 마당 -신념, 상념, 감정 다루기.
[3] 루이스 L. 헤이, 엄남미 역, 삶에 기적이 필요할 때: 현대인의 삶을 바꾸는 긍정 확언과 끌어당김의 법칙 (나들목, 2011), 1부 건강 1장 질병(불편함) 치유하기, 사랑은 치유하는 힘이 있다. 원서는 다음과 같다. Louise L. Hay, Modern-Day Miracles: Miraculous Moments and Extraordinary Stories from People All Over the World Whos e Lives Have Been Touched by Louise Hay (Hay House Inc.,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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