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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움의 기술 The Art of Blossoming

16. 춤

by doctorpresent 2021. 10. 17.

춤이란 우리가 몸을 움직여 외부와 관계를 맺는 모든 것이다.
노래, 그림, 춤 중 가장 느린 진동수이다. 스포츠, 악기 연주, 다른 사람과 대화, 만남, 요리, 공예, 사회활동 등이 모두 '춤'이다. 우연의 일치, 징조, 동시성을 경험하는 차원도 춤의 차원이다. 몰입(flow)이 일어나는 차원이다. 춤이 제대로 일어난다면 나와 대상은 하나가 되고 과정은 물 흐르듯이 진행된다.
이 과정은 미묘하다. 노래와 그림의 차원보다 오해가 많이 일어난다. 마법과 같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차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차원의 비밀을 알아내려고 노력했다. 몰입, 도(道) , zone으로 표현되는 차원이다. 
춤에 대해 설명하기 위해 스포츠, 악기, 만남에 대해 말하는 것이 좋겠다. 춤을 출 때는 나와 대상이 있다. 활을 쏠 때는 나와 활이 관계를 맺어 활쏘기라는 춤이 된다. 피아노를 칠 때는 나와 피아노가 관계를 맺어 연주라는 춤이 된다.
춤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이순간 신이 춤을 청하러 왔음을 알아차리고, 높은 에너지인 내맡김으로 춤은 완성된다. 내맡김은 사랑의 하나이며 감사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신이 춤을 청하러 왔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세 가지를 말한다. 
첫째, 신이 지금 여기에 춤을 추기 위해 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둘째, 춤을 청하고 손을 건네고 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이다.
셋째, 나도 이 순간 춤에 참여하는 한 부분으로서 순수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신이 지금 여기에 춤을 추기 위해 존재한다. 
신은 이 순간 이 자리에 있다. 그것도 춤을 추기 위해 있다. 신은 더 높은 자아, 더 큰 영혼으로 불러도 좋다. 나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더 큰 무언가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나와 함께 한다. 이를 알아차린 상태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의 차이는 너무나 크다.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에서는 이야기 속의 한 인물이 되어 기억과 생각과 감정에 반응하며 갈등과 애증을 반복하며 꽃을 만들기를 반복할 것이다. 시간과 장소와 등장인물만 달라질 뿐 같은 패턴일 것이다. 그리므로 우선 신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하다. 내면의 빈 공간 혹은 외부의 빈 공간을 바라보고 이 공간이 과연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인지 잠깐 살펴본다면 어느새 신비로운 무언가를 알아차릴 것이다. 도저히 신이 없을 것 같은 때라도 자신의 호흡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심장을 바라본다면 자신의 생명을 가능케 하는 무언가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신이 단순히 옆에 있는 것만이 아니라 나와 춤을 추기 위해서 왔다고 생각하자. 그림을 그리려 온 것이 아니라 춤을 추기 위해 왔다. 나도 춤을 추기 위해 여기에 있으며 내 앞에 있는 대상도 춤을 추기 위해 여기에 있다. 그림으로 본다면 부족하지만 춤으로서는 온전하다. 흠결이 없다. 
이러한 인식이 춤을 추는 첫 단추이다. 
내 자신은 완벽한 열쇠이며 나를 제외한 세상은 완벽한 좌물쇠로 본다면 어떨까?

한 아버지가 아들의 생일이 되자 방에 아들이 바라는 선물을 방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들아, 저 방에 네가 그렇게 갖고 싶어 했던 선물이 있단다. 여기 <열쇠>가 있으니 어서 문을 열어보렴" 그러자 아들이 <열쇠>를 바라보더니 말했습니다. "아빠, 나 이 열쇠가 마음에 안 들어요. 왜 이렇게 크고 못생겼죠? 더 예쁜 열쇠를 주세요"

이 이야기에 나오는 아들은 우리와 많이 닮았다. 그토록 바라던 선물이 바로 옆방에 있고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까지 주어졌는데 열쇠의 모습이 맘에 안든다고 투정한다. 여기서 문에 꼭 맞는 열쇠는 지금 이 순간의 있는 그대로의 우리 자신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이 순간 그대로의 자신이 바로 '완벽한 열쇠'이다. 그 자각이 문을 열어 준다. 만일 열쇠와 자물쇠가 아귀가 꼭 맞는다면 어떻게 될까? 아귀가 완전하게 맞으면 열쇠와 자물쇠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다. 그럼 말 그대로 열쇠와 자물쇠는 하나가 될 것이다. 만일 ‘이 순간은 원래 이래야 한다. 다음 순간은 더 나은 순간이 될 수 있겠지만 어쨌거나 이 순간은 원래 이래야 한다. 자기 자신도 이래야 한다. 그저 이 순간 나 자신은 완벽하다. 즉 내가 꿈꾸는 자신이어서 완벽한 것이 아니라 열쇠로서 완벽하다’라는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본다면 나와 세상은 아귀가 딱 맞아 경계가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나는 말 그대로 이 순간과 하나가 되어 버릴 것이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하나다." 부처님은 아마 매 순간 완벽한 열쇠가 되어 문을 열고 또 여셨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한 알의 밀알이 썩지 않으면 그저 한 알의 밀알이지만 썩으면 수없이 많은 밀알이 열리리라." 한 알의 밀알이 이 순간 자신을 내맡기지 않으면, 그대로 수용하지 않으면 자물쇠는 자물쇠, 열쇠는 열쇠로 아귀가 맞지 않은 채 아무 성과 없이 끝난다. 밀알이 이 순간의 작은 나를 붙잡지 않고 완전히 내려놓으면 이 순간과 아귀가 딱 맞아서 경계가 사라진다. 즉 썩게 되어 문은 열린다. 예수님은 아마 매 순간 썩고 또 썩어 수많은 밀알을 만들어내셨을 것이다.
우리도 완벽한 열쇠가 되는 상태, 춤을 추는 상태를 경험한 적이 있다. 책에 완전히 몰입해서 읽다보면 자신의 존재는 사라지고 책을 보는 행위만 존재할 때도 '우리는 하나다'의 경지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에도 자기 자신은 사라지고 사랑과 평화가 그 자리에 남는다. 잠깐의 산책, 잠깐의 명상의 시간도 그 시간이 될 수 있다. 거울을 보며 "아무개야, 나는 너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고마워."라고 말할 때도 그 순간이다. 마음에 안 드는 친구를 볼 때도 마음속으로 "친구야, 난 네가 지금 이래야 할 순간임을 알아. 미안해. 사랑해. 고마워. 너를 통해서 내가 판단하고 저항하고 있는지 아니면 열쇠가 되는지 알게 되었어. 고마워."라고 말할 때도 바로 그 순간 열쇠가 되는 순간이다. 열쇠가 되어 문을 열면 마음에 안 들고 힘들었던 그 순간이 축복으로 변해버린다. 매일매일이 이러한 반전의 연속이 될 수 있다. 
열쇠가 좌물쇠와 떨어져 있다가 서로 접하는 과정을 '춤'으로 바라보자. 열쇠는 열쇠대로 온전하며 자물쇠는 자물쇠로 이미 온전하다. 이 둘이 서로를 완벽하다고 생각하고 만난다면 경계는 사라질 것이다. 춤이 이루어질 것이다. 열쇠와 자물쇠가 말 그대로 하나가 되고 그 순간 문이 열린다. 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 둘이 서로를 그림으로 본다면 어떻게 될까? 춤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아서 서로를 온전하지 못하고 어딘가 모양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면 어떻게 될까? 서로 모습을 바꾸려고 애쓰면 어떻게 될까? 춤은 사라진다. 통제와 애씀으로 꽃을 만드는 삶으로 넘어간다. 
신이 나에게 춤을 청한다는 것은 나와 대상을 둘러싸고 있는 신이 '있음'을 알아차린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신이 나와 대상을 둘러싸고 존재함을 알아차린다면 그리고 그 존재에 감사하고 내맡길 수 있다면 높은 수준의 에너지 상태로 넘어가게 된다. 마음은 고요해지고 영감이 솟아날 것이다. 이 상태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주의를 어떻게 기울이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대상에만 집중하는 좁은 주의와 대상을 포함해서 공간을 함께 자각하는 넓은 주의가 있다. 넓은 주의가 자각을 3차원적으로 만들고 신을 자각하는 상태로 이끈다. 실제로 뇌파는 느려지고 일관된다. 넓은 주의를 위해서는 사물뿐 아니라 공간을 자각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주의를 의식적으로 넓혀 전체를 자각하여도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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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지점과 자신에게 마음이 붙들려 있으면 이를 어떻하든 통제하려고 했을 것이다. 이러한 집착에서 벗어나 현재 느껴지는 여러 감각을 함께 받아들이는 순간 꽃피우는 삶으로 넘어갔다. 전체를 바라보는 것은 신을 알아보는 상태와 비슷하다. 신을 알아보는 상태에서 이 순간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순간, 꽃을 만드는 것을 항복하는 순간, 진동수는 상승하고 현재와 같은 진동수가 되어 현재와 하나가 된다. 그리고 평소와 다른 의식상태가 되어 영감을 받게 된다. 
암벽 등반가인 제리의 예도 살펴보자. 제리가 바위가 많은 콜로라도 산악지대의 험한 암벽 위에서 고립되었을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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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를 넓히면 몰입하기가 수월하고 많은 운동선수를이 표현하는 특별한 상태(zone 혹은 flow) 안으로 들어간다. 야구 선수는 공이 슬로 모션처럼 천천히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물 흐르는 듯이 경기를 치른다. 이 상태는 억지로 만들 수 없다. 강하게 원한다고 만들 수 없다. 은총을 받는 것이고 허락을 받는 것이다. 기술과 관계없으며 전략과 관계없다. 나의 마음속 첫 생각, '초심'이 가장 중요하다. 누구나 자신과 대상을 대하는 태도가 있다.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꽃을 만들지, 꽃을 피울지를 결정한다. 자신이 있는 그대로 온전하고 완전하다고 여기기 않는다면 무언가 결핍되고 부족한 존재라고 여긴다면 자신을 '고쳐야' 하고 '통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와 관계를 맺는 대상도 불완전하다고 생각한다면 역시 '통제’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원하는 상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즉 꽃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상태에서는 긴장이 생기고 두려움과 어느 정도의 분노도 섞여 있다. 몰입을 경험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나와 대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는 무의식에서 이루어지며 주의 깊게 자신의 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모르는 채 관계에 임하게 된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열심히 최선을 다 했는데 일이 잘 안되네요.", "겉도는 느낌이에요." 최선을 다했다고 하지만 꽃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 것이다. 관계의 정수를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춤을 추지 못했고 겉도는 느낌이 든다. 
만일 자신이 지금 온전하고 완전히 새롭고 완벽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그리고 나와 관계를 맺는 내 주변도 온전하고 완벽하다는 인식이 있다면 꽃을 만드려는 노력은 사라진다. 마음의 수다도 멈추어지고 고요함이 생긴다. 시간은 느려진다. 

춤을 추기 위해 알아차려야 하는 두 번째를 살펴보자.
둘째 신이 춤을 청하고 손을 건네고 있다.
이렇게 내면에서 열쇠와 자물쇠가 딱 맞게 되었다면 무도회의 문이 열리고 춤이 시작될 것이다. 이 때에는 춤이 시작될 수 있도록 마중물이 필요하다. 신이 내미는 손길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즉, 소망을 이루도록 도와주는 힘의 방향성을 알아주는 것이다. 신이 곁에서 춤을 청한다는 것에 감사하고 100% 만족한다는 뜻이다. 이 순간 감사하지 못하고 완전하게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은 이 순간 무언가를 그림으로 보고 두렵거나 화가 난다는 것이다. 신은 노파의 모습을 하고 춤을 청하러 왔다. 노파는 이 순간 필요한 춤을 완벽하게 출 수 있다. 그런데 노파의 모습을 보고 여러 판단을 한다. 그 순간 신의 손길은 사라진다. 물 반잔의 비유를 살펴보자. 물 잔에 물이 반이 남았을 때 물이 반이나 차 있음을 감사하면 물을 채우는 힘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물이 반밖에 차있지 않아 두려워하거나 원망한다면 물은 점점 더 줄어들다가 사라질 것이다. 여기에 커다란 비밀이 있다. 이 순간 감사하는지, 감사하지 않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생긴다. 이 순간에는 나의 건강을 돕는 힘과 풍요롭게 하는 힘과 성공하게 하는 힘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 삶의 각각의 부분에 감사한다면 그 각각의 힘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거나 불만족스러워한다면 도와주는 힘은 멈추고 두려워하고 걱정했던 일이 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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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알아차림은 다음과 같다. 
셋째, 나도 이 순간 춤에 참여하는 한 부분으로서 순수하게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 순간의 온전함을 알아차리고 춤을 일으키는 힘을 알아차린 후에는 '판단없는 순수한 인식'이 필요하다.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한다. 판단 없이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 본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여기서 판단한다는 것은 '그림'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그림은 그림 그리는 차원에서 필요하지만, 춤추는 차원에서는 독으로 작용한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눈을 뜨고 바라보는 것을 '그림'으로 판단하지 않는 일이다. 춤으로 바라보겠다고 결심하지 않는 한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림으로 판단한다. 그림으로 판단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통제'하려고 한다. 이 순간을 자신이 바라는 그림과 비교하고 이 순간이 만족스럽지 않은 그림이라 생각한다면, 이 순간을 통제하려 한다. 분노와 두려움이 따라온다. 혹시 이 순간이 마음에 든다면 이 순간이 변할까 봐 초조해진다. 이 순간을 그림으로 박제해서 변하지 않게 하려고 한다. 집착이 따라온다.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성공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분홍색 코끼리를 생각하면 안돼. 생각하지 말자."라고 되뇌는 것일까?
이는 오히려 분홍색 코끼리를 더더욱 떠올리는 방법이다.
파란색 새를 생각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이 순간에 그림 그리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이를 성공하려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그림으로 판단하면 안 돼.’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이 순간에 집착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까?
'이 순간에 집착하면 안돼. 집착하지 말자."라고 되뇌는 것일까?
이 순간이 완전히 새롭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완벽한 순간임을 주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이 순간 춤을 추는 것이다.
그 다음 좋은 방법은 ‘집착이 일어나도록 두자. 판단이 일어나도록 내버려 두자. 그 감정이 일어나도록 보자.’하고 멍석을 깔아주는 것이다. 늘 일어났던 감정이므로 해야 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대본을 보고 연기하는 배우처럼 ‘그래, 감정을 잘 잡고 평소대로 집착을 해보자. 잘해보자.’ 하고 의도적으로 판단하고 집착하려 하면 오히려 그 상태에서 떨어져 나온다. 어느 순간 가슴이 시원해지고 평화로운 공간 안에 들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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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행동이 무엇인지 알면 이 순간을 '그림'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모습을 그 그림과 비교에서 바르다 혹은 그르다라고 판단한다. 그르다고 판단했으면 바르게 바꾸려고 애쓴다. 이 과정이 테니스 기술을 발전시키는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티머시 골웨이는 중립 변수에 집중하도록 하였다. 중립적이고 핵심적인 변수는 속도, 위치, 높이 등이다. 이 핵심 변수에 집중한다면 한마디의 기술 지도가 없이도 적은 노력으로 지속적인 개선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일이 처음에는 마법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이 상태가 바로 춤을 추는 상태이다. 그림 그리는 마음이 잠잠해지고 흐름 속에서 시간을 잊고 몰입하여 춤을 추는 것이다. 핵심 변수는 춤추는 마음을 깨우기 위해 우리가 집중하는 변수이다. 나와 대상의 속도, 위치, 높이는 계속 변하는 변수이다. 그림 그리는 마음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다. 
춤은 고유의 리듬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테니스에서 눈으로 볼을 주목하고 손으로 라켓을 의식하는 것이다.
운전에서 눈으로 앞차와의 거리를 주목하고 손으로 핸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명상에서 날숨과 들숨을 의식하는 것이다. 
테니스에서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지듯이 운전시에도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물 흐르듯이 운전하게 된다. 
명상 시에도 올바른 명상의 모습을 흉내 낸다면 꽃을 만들게 된다. 파도와 같이 밀려들어오고 밀려나가는 리듬에 의식을 둔다면 호흡과 하나가 될 것이다. 호흡은 더 큰 나의 움직임이므로 더 큰 나와 하나가 되어 춤을 추게 되고 꽃은 피어날 것이다. 
활을 쏠 때도 '그것'이 쏘게 되며 악기를 연주할 때도 '그것'이 연주하게 될 것이다. 

 

 

중략 -------------------------------



춤에는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하다. 주도권을 작은 나에서 큰 나에게 넘기는 과정이 필요하다. 영감을 느끼고 내맡기는 연습이 필요하다. 훌륭한 궁사가 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다만, 기교(術, skill)가 아닌 예(藝, ART)의 수준에서 연습이 필요하다.
춤의 차원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선언은 다음과 같다. 
지금 모든 것이 온전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깁니다. 나는 모든 것에 완전하게 만족합니다. 
지금 여기에서 천사들이 춤을 청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춤은 무엇일까요?
여기에 숨어 있는 말을 포함해서 진술 하면 다음과 같다. 
(그림으로 본다면 많은 것이 불완전하게 보입니다. 통제해야 할 것이 많아 보입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에 대한 선택권은 나에게 있습니다. 나는 춤으로 보기를 선택합니다. 춤으로 본다면) 지금 모든 것이 온전합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당신께 내맡깁니다. 나는 모든 것에 완전하게 만족합니다. 
(그림으로 본다면 모든 일을 내가 통제해야 할 것 같지만 춤으로 보기를 선택한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일만 하면 됩니다.) 지금 여기에서 천사들이 춤을 청하고 있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춤은 무엇일까요?

노래, 그림, 춤 이 세 가지에 대해 알아보았다. 각각에 대해서 다룬 책들은 많다. 이제는 지도를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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