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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움에 대한 글들

19. 입맞춤

by doctorpresent 2022. 4.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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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우는 삶은 매 순간 거듭나는 삶입니다.

탈바꿈하는 삶입니다.

애벌레는 누에고치에서 큰 변화를 일으켜 나비가 됩니다.

사실은 매 순간 탈바꿈을 합니다. 어린 애벌레는 탈바꿈을 하여 좀 더 큰 애벌레로 거듭납니다.

어린 애벌레를 매만지고 더 늘리고 부풀리고 꾸며서 조금 더 큰 애벌레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매번 새롭게 창조하여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그렇게 조금씩 더 큰 애벌레로 창조하다가 조건들이 갖추어지면 깊게 입맞춤을 하고 나비가 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애벌레도 그럴진대 우리도 거듭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거미는 복잡한 거미집을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작은 씨앗은 정교하고 기하학적이고 아름다운 꽃을 피워낼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지혜를 방해하지만 않는다면 꽃을 피워냅니다.

탈바꿈과 거듭남은 입맞춤과 비슷합니다.

대상과 내가 하나임을 알아차릴 때 느껴지는 사랑, 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은 입맞춤과 비슷합니다.

이러한 온전한 받아들임 후에 내적인 변화가 생깁니다.

이는 일종의 연금술이며 마법입니다.

이러한 과정의 아름다움은 강렬해서 여러 이야기 속에 남아 있습니다.

공주가 개구리에 입맞춤을 하니, 개구리가 변화하여 사람이 되었습니다.

잠자는 숲 속의 공주에게 입맞춤을 하니, 공주가 잠에서 깨었습니다.

영화 페넬로피(Penelope)에서 주인공은 다음과 같은 말을 한 순간 저주에서 풀렸습니다.

"I like myself the way I am! 난 지금 이대로 날 사랑해요!(좋아해요)"

이러한 연금술과 마법은 동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입맞춤할 대상을 찾기 위해 개구리를 찾으러 다닐 필요 없습니다.

잠들어 있는 공주를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 내면 안에 개구리가 있습니다.

공주가 있습니다.

개구리처럼 보기 싫어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잠든 공주처럼 무기력한 부분이 있습니다.

이러한 개구리와 공주에게 입맞춤을 할 영웅을 기다릴 필요 없습니다.

그 영웅은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자신만이 그 개구리와 공주에게 입맞춤을 할 수 있습니다.

입맞춤을 언제 할 수 있을까요?

내가 걱정하는 이 일만 해결 되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바라는 이 일만 이루어지면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입맞춤은 오늘 할 수 있습니다.

입맞춤을 하고 다시 그 일을 걱정하고 그 일이 잘 되기를 전전긍긍해야 할까요?

어쩌면 입맞춤 후에는 걱정하던 일이 해결되고 바랐던 일들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아니,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던 이루어지지 않던 상관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평온하고 행복하기 때문입니다.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있을 때입니다. 일이 가장 힘들었던 때로 기억합니다.

중환자실에 배정받은 날부터 잠시도 안도한 적이 없었습니다.

수십 분의 중환자분들을 담당하면서 여기저기에서 쉴 새 없이 알람이 울리고 호출이 울렸습니다.

인공호흡기 세팅이 어긋나면 환자분들 호흡이 힘겨워지기 때문에 인공호흡기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혈액검사도 입원환자와 비교도 안되게 자주 하고 많은 항목을 검사해야 했습니다.

어긋한 수치들은 바로바로 교정해야 했습니다.

어느 날은 환자 두 분이 동시에 심정지가 와서 심폐소생술(CPR)을 동시에 해야 했습니다.

또 어떤 날은 환자분이 갑자기 토혈을 해서 밤새 환자분에게 매달렸습니다.

그렇게 긴장하며 정성을 들여 환자분이 좋아져 일반병실로 올라가면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며칠은 마음이 뿌듯해서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불렀습니다.

하지만 어떤 노력을 해도 환자분이 끝내 돌아가시면 며칠은 입맛이 없었습니다.

이래저래 체중이 많이 줄어든 시기였습니다.

어느 날 응급실을 통해 환자분 한분이 중환자실에 입원하였습니다.

20세 젊은 여자분이었습니다. 급성 백혈병 진단받은 분이었습니다.

호흡곤란으로 오셨습니다.

응급실에서 한 혈액검사를 보니 범혈구 감소증이 왔고 특히 혈색소가 3 정도로 아주 심한 빈혈이었습니다.

밤새 수혈을 해서 조금 교정하니 환자분이 조금은 안정이 되었습니다.

환자분은 이상스럽게 평온했습니다. 죽음이 가까이 있었는데도 표정이 편안했습니다.

그 많은 검사들을 견디고 있었습니다.

점심시간마다 가족들이 면회를 왔습니다.

부모님과 언니는 환자분이 회복하기를 간절하게 바라고 있었고 어떻게 치료하는지 많이 궁금해하셨습니다.

스무 살 밖에 안된 딸이 중환자실에서 생사의 기로에 있다면 어떤 부모라도 제정신을 유지하기가 어려울 거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언니는 침착하게 저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만 주셨습니다.

그 당시 저의 모든 신경은 그 환자에게 쏠려 있었습니다.

제가 담당하고 있는 수십 명의 환자분 중에 가장 어린 분이었습니다. 그 환자만은 살리고 싶었습니다.

환자분은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주 두 주가 지나면서 상황은 점점 더 안 좋아졌습니다.

신장 기능과 심장 기능이 약해져가고 있었습니다.

수혈을 해도 이미 멈추어버린 골수는 새로운 혈액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산소포화도는 나빠지고 있었습니다. 고심하다가 기관삽관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연결했습니다.

소변 양은 점점 줄어들었고 폐에는 물이 찼습니다.

부모님을 만나는 일이 심적으로 힘들었습니다.

부모님은 그 상황에서도 저의 설명을 다 듣고 슬픈 가운데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조만간 더 이상 버티지 못할 순간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환자분의 심장이 멈추었고 그렇게 환자분을 보내야 했습니다.

부모님은 마지막까지 '평온한 슬픔' 속에 있었습니다.

너무나 딸을 사랑하고 있었다는 것이 느껴졌고 얼마나 슬픔이 깊었는지도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표현하기 힘든 평온함이 있었습니다. 제가 사망선고를 한 환자분들 중 가장 평온한 이별이었습니다.

저는 상심에 찬 채 수주를 지내다가 다른 환자분들 돌보느라 그 환자분을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가 2년 후 환자분의 언니 분에게 문자를 받았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안녕하세요. 절 기억하실지 모르겠네요. 2년전에 백혈병에 걸린 제 동생 마지막까지 잘 지켜주셨지요. 며칠전부터 카톡을 시작했는데 선생님 번호가 제 핸드폰에 있었나 봐요. 건강하시고요. 늘 제 동생에게 하셨듯이 다른 환자도 같은 마음으로 잘 치료해 주세요. 이곳 먼 영국에서 인사드립니다. 안녕히계세요.

또다시 몇 년 후 환자분의 어머님에게서 문자가 왔습니다. 일부 내용을 옮겨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전 작은아이 떠나보내고 제 삶과는 다르게 방황하다가 복지 쪽에 관심도 있고 하여 어르신 돌봄 이를 하며 지내요.

환자분과 가족 분에게 살려주어서 고맙다는 인사는 들어보았지만, 살리지 못한 환자분의 가족분에게 수년 후에 연락을 받은 적은 처음이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스무 살 그 환자분은 마지막 순간까지 내맡김 상태였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꽃 피움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이제는 결과가 성공이어야 성공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최선을 다 할 뿐입니다.

누구나 어느 순간에서도 평온에 머물 수 있고 꽃 피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 글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번 글까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모두 다 하였습니다.

조금 더 풀어내었습니다. https://theartofblossoming.tistory.com/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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