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하루가 참 힘겹습니다.
직장에서 제 역할을 겨우 겨우 해냅니다.
잘해보려 하지만, 어딘가 삐걱거리고 억지로 하는 느낌입니다.
동료와 의사소통도 어딘가 매끄럽지 않습니다.
일은 진척이 없고 성과도 잘 나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여러 일을 계획했지만, 마음은 떠 다니고, 건성으로 하게 됩니다.
제대로 쉬지도 못합니다. 피곤하기만 하고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마법과도 같은 날이 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하여 직장에 도착했습니다.
많은 일이 쌓여 있지만 버겁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많은 일들을 바라보면 어떤 순서로 해야 할지 보이고 서로의 연결고리들이 보입니다.
하나하나 일을 합니다. 여러 일들이 있지만 한가지 일을 할 때는 그 일 생각만 합니다.
몰입해서 하는 일이 즐겁기까지 합니다.
동료와 짧게 이야기 했는데도 무슨 이야기인지 다 이해했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처럼 물흐르듯이 함께 일을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 뿌듯합니다. 피곤하지 않습니다.
집에서도 마법은 계속 됩니다.
가족들과 한 공간에서 있는 일이 편안합니다.
마음은 중심이 잘 잡혀 있고 고요합니다.
쉬기도 하고 집안일도 하면서 몸과 마음이 쉽니다.
오늘은 춤추는 차원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춤이란 우리가 몸을 움직여 외부와 관계를 맺는 모든 것입니다.
노래 , 그림, 춤 중 가장 느린 진동수예요.
스포츠, 악기 연주, 다른 사람과 대화, 만남, 요리, 공예, 사회활동 등이 모두 ‘춤’입니다.
우연의 일치, 징조, 동시성을 경험하는 차원도 춤의 차원입니다.
몰입(flow)이 일어나는 차원이에요.
춤이 제대로 일어난다면 나와 대상은 하나가 되고 과정은 물 흐르듯이 진행됩니다.
노래, 그림, 춤추는 차원, 이 세 가지 차원 중 춤추는 차원에서 가장 많은 실수가 일어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은 책들이 춤을 더 잘 추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일을 더 잘하고 운동을 더 잘하고 악기를 더 잘 다루고 싶어 합니다.
요리를 더 잘하고 대화를 더 잘하고 게임을 더 잘하고 싶어 합니다.
더 잘하기 위해 전략을 세우고 노하우를 배우고 집중하려 합니다.
모두 다 도움이 되는 방법입니다.
하지만, 어느 수준 이상 오르기는 힘이 듭니다.
시간을 더 들이고 돈을 들이고, 노력을 더 하지만 춤과 하나가 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이 몰입하고 싶어 합니다. 흐름(flow)을 경험하고 싶어합니다.
스포츠 선수처럼 그 영역(zone) 에 도달하고 싶어합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은 차와 하나가 되고자 소망합니다.
활쏘는 궁사는 활과 하나가 되고 싶어합니다.
시간이 느리게 가고 사람들의 동작이 느리고 선명하게 보이고 사랑과 평화가 있는 특별한 그 영역에 가고 싶어합니다.
가장 중요한 비밀은 마음속에 있습니다.
나와 대상을 바라보는 첫 마음(초심)이 꽃을 만드는 사람인지, 꽃을 피우는 사람 인지에 따라 모든 결과가 달라집니다.
꽃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첫 단추를 채우면 모든 것이 어긋납니다.
꽃을 만드는 사람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더욱더 능숙하게 꾸미는 일을 더 잘합니다.
겉은 꽃과 같아 보여서 잘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프로처럼 보이고, 전문가처럼 보이고 다정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꽃을 만드는 사람은 '통제'에 전문가입니다.
나와 대상을 통제하여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에 나와 대상이 하나일 때는 없습니다.
그 과정에는 감사와 사랑이 없습니다. 분노 혹은 두려움 혹은 집착이 있습니다.
춤추는 차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초심이 중요합니다. 초심자 행운은 어떻게 일어나는 것일까요?
초심자는 처음 하기 때문에 잘 모르고, 따라서 통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한 발자국 내딛고 또다시 내딛습니다.
이미 초심자가 아닌 사람은 어떻게 춤을 추어야 할까요?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서 첫 마음을 찾아야 합니다.
자신에게 질문하셔요.
" 나는 혹시 지금 저 사람을 혹은 이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고 싶은 것일까? "
혹시 마음이 " 그래 맞아, 하지만, 통제해야 나도 좋고 그 사람도 좋은 거야, 이러한 통제는 괜찮아."라고 대답한다면 다시 생각해보셔요.
" 이 통제가 옳다하여도 나는 꽃피우지는 못할 거야."
자신의 첫 마음이 통제하고 하는 마음( 다투거나, 바꾸려 하거나, 꾸미거나, 도망치거나, 무시하거나) 임을 알아차림이 첫 단계입니다.
그리고 다시 알아차리고 사랑을 선택합니다.
지금 신이 지금 여기에 춤을 추기 위해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춤을 청하고 손을 건네고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내 삶을 주관하는 신이 있다면 지금도 내 곁에 있을까요?
"아니요" 라면 그는(혹은 그녀는) 신이 아닐 거예요.
내가 이렇게 힘들고 부당하고 괴로운 상황에 처했는데도 지금 내 곁에 신이 계실까요?
대답은 항상 " 네, 지금 내 곁에 있습니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매번 잊어버립니다. 당연히 항상 내 곁에 있을진대, 교회나 절이나 혹은 명상할 때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실을 다시 알아차리면 꽃 피우는 삶으로 접어듭니다. 춤추는 삶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신이, 이 순간이 불완전해서 내가 고치기를, 꾸미기를 바라실까요?
아닐 겁니다. 매 순간은 온전하고 완벽하고 새롭습니다.
불완전하고, 결함이 있고 지루하게 보이는 것은 마음속 이야기 때문입니다.
신은 내가 어떻게 통제하고 고치고 싸울지 옆에서 지켜보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저 완전하고 완벽하고 새로운 이 순간 나와 춤을 추기 위해 여기에 있습니다.
이 순간을 통제할 거리로 볼지, 온전한 가운데 춤을 출 대상으로 볼 지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일을 한다면 나와 일할 거리가 춤을 춘다고 생각해보셔요.
열쇠와 자물쇠가 춤을 추듯이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해보셔요.
악기를 연주한다면 내가 악기를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악기가 춤을 춘다고 생각해보셔요.
대화할 때는 이 사람보다 내가 우월함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사람을 알아주고 춤을 춘다고 생각해 보셔요.
춤의 차원은 가장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오해가 많이 일어나는 차원입니다.
당뇨 조절이 잘 안 되는 환자분에게 음식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금연의 필요성에 대해 설명할 때였습니다.
아무리 설득해도 환자분은, 단것을 끊을 수 없고 금연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설득하다가 지쳐버렸습니다.
할 말이 더 이상 없어진 저는, 환자분에게 "그동안 사시면서 마음고생이 많으셨지요? "라고 말해버렸습니다.
그러자 환자분이 잠시 멍하게 저를 바라보시다가 말씀하셨습니다.
남편이 췌장암으로 사망하고 얼마나 마음이 슬펐는지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삶에 낙이 없다고 했습니다. 단 것과 담배만이 삶을 지탱해 준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마음이 뭉클했었습니다. 정말 사는 게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설득하는 것을 멈추었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분은 그 후로 스스로 단 것도 줄이시고 금연은 아니지만, 담배 개수도 줄이고 있었습니다.
당조절도 조금씩 잘 되었습니다.
저는 그날 (저도 모르게) 환자분과 춤을 추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은 많은 일거리 앞에서 혼잣말을 합니다.
" 그래.. 일거리들아, 나와 어떤 춤을 추겠니? "
일거리 하나하나를 춤추는 대상으로 바라보고 대하면 어느새 일이 끝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집에서 가끔 설거지를 할 때도 그릇과 내 손이 춤을 춘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번거로운 설거지가 한결 수월합니다.
건강을 위해 달리기를 할 때도 여기서 저기까지 힘들어도 달리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땅과 나의 몸이 춤을 춘다고 생각하고 매 순간 오직 한걸음만 생각하면 어느새 10km를 달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림, 노래, 춤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다음에는 이 모든 것들을 '지도'로 만들어 보려 합니다.
좀 더 풀어내었습니다. https://theartofblossoming.tistory.com/20
삶을 함께 살아가는 학생인 저의 이야기를 찬찬히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꽃피움에 대한 글들
16. 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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