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알아차림
알아차림이란 무엇일까요? 알아차림은 왜 중요할까요? 알아차림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알아차림에 대해 처음 들어본 것은 틱낫한 스님의 책을 읽었을 때였습니다.
대학생 때 틱낫한 스님의 책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이 순간 생생히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틱낫한 스님이 좋았습니다. 어렵지 않은 말들인데 가르침은 매우 심오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알아차림 자체가 붓다의 에너지라고 하였습니다. 특히 호흡을 알아차리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호흡에 대해 알아차리면 현재에 닻을 내릴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자신의 감정에 대해 깨어 있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분노가 있으면 분노를 알아차리고 어린아이처럼 자애롭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스님의 책을 만나기 전에는 제 불행의 원인이 '지식'의 부족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식을 많이 외우고 지식들의 연관성을 깨우쳐서 공부를 넓게 그리고 깊게 하면 불행은 끝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식의 양과 깊이는 행복과 관계가 없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알아차림을 잘하면 불행을 끝내고 행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때부터 알아차림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알아차림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녔습니다. 아니, 알아차림이 정확하게 어떤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호흡을 알아차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숨을 몇 시에 들이마시기 시작해서 몇 초 동안 마시고 다시 언제 날숨으로 바뀌어서 몇 초 동안 내쉬는지 설명할 수 있다면 알아차림 상태에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내가 애쓰지 않아도 파도와 같이 숨이 밀려들어오며, 나의 깊은 곳에 닿았다가 썰물이 나가듯이 다시 숨이 나갑니다. 내가 숨에 개입해서 숨을 길게도 짧게도 쉴 수 있지만, 숨을 그대로 놓아두어도 자연스럽게 숨이 들어오고 나갑니다. 마치 신이 나에게 춤을 청하는 듯 같습니다. 나는 신에게 보조를 맞출 뿐이에요. 신이 들어올 때 함께 따라옵니다. 숨에 개입하지도 않고 숨을 무시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깨어 있으며 신을 따라갈 뿐입니다. 이 과정에서 내 곁에 신이 존재함을 알게 된다면 진정한 알아차림일 것입니다. 숨에 대해 깨어 알아차린다면 경외심과 감사함이 우러나올 것입니다. 이 상태가 제가 생각하는 알아차림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알아차림은 대상을 새롭게 바라보아서 통찰을 얻는 과정입니다.
대상을 어떻게 새롭게 본다는 것일까요?
감사해야 할 대상, 사랑해야 하는 대상으로 봅니다.
다투어야 할 대상, 통제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감사하고 사랑할 대상이에요.
알아차림은 왜 중요할까요? 통찰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떤 통찰을 얻게 될까요?
신이 옆에 없는 것 같았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내 안에 힘이 없는 것 같은데 바꿀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이 순간 불완전해 보였는데 온전하다는 것을 알아차립니다.
오늘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 만난 그 사람 때문입니다. 그가 얼마나 배려가 없었으며 예의가 없었는지 자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나의 일을 어떻게 방해했는지 상세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는 알아차림 상태에 있다는 뜻일까요?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한 그 사람이 나의 어떤 면을 비추었는지 나의 내면을 바라봅니다. 나의 어떤 면이 희생자의 진동수를 내어서 그 사람과 같은 가해자가 끌려온 것일까요? 나도 그와 비슷하게 행동할 때가 있었을까요? 나도 그처럼 원하는 것을 위해서 나보다 약한 자에게 배려 없이 행동할 때가 있을까요? 나의 내면에서 그와 비슷한 면을 알아차리고 사랑으로 감싸 안으면 나의 진동수가 변할 거예요. 그는 마음속에 어떤 두려움이 있어서 그러한 행동을 하는 것일까요? 그의 내면에 있는 천진한 어린아이를 볼 수 있다면, 그 아이에게 사랑을 보낼 수 있다면 그 또한 이전과 다를 거예요. 이러한 과정이 있기 전에는 그와의 관계에서 나는 주도권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이 순간의 희생자 같았습니다. 알아차림과 하나됨을 통해서 바꿀 수 있는 힘이 내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알아차림입니다.
내가 가난하다는 사실을 마주하면서,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바라봅니다. 나는 나보다 풍요로운 사람을 보면 질투심이 일어요. 그리고 내 처지가 부끄러워요. 내가 친구들보다 얼마나 더 가난하고, 앞으로도 부자가 되기보다 계속 가난할 가능성이 많음을 알아가는 것이 알아차림일까요?
아닙니다. 이는 알아차림이 아닙니다.
내가 가난함을 싫어하고 부자에 질투심이 있음은 나에게 풍요롭고자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임을 알아차립니다. 풍요에 대한 욕구는 부자가 되기 위한 씨앗입니다. 다이아몬드가 숨어 있는 원석입니다. 자신에게 욕구가 있음을 느끼고 이를 무시하지도 않고 여러 이유들을 대며 억누르지 않고 소중하게 다룬다면 알아차림의 단계에 있습니다.
알아차리면서 통제하지도, 거기서 도망가지도 못 본 척하지도 않고 억누르지도 않고 옳고 그름을 따지지도 않고 변화시키려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방법은 있습니다. 그 좁은 길로 가는 지름길은 바로 '감사'입니다. 이 순간이 완벽한 순간이며 열쇠가 되는 순간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순간에도 나지막하게 '감사합니다!'라고 속으로 외친다면 마음은 이야기를 만들 동력을 잃습니다. 대신 숨겨진 다른 동력이 켜집니다. 대상을 알아차리고 높은 에너지인 감사로 감싸 안는다면 지금 있는 곳이 천국이 될 거예요.
다음에는 감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저에는 이 글들이 중요한데 지루한 이야기일까 걱정이 되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을 더 명료하게 쓰려고 노력하겠습니다.
관련글 : https://theartofblossoming.tistory.com/12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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